배꼽에 두 손 모으고

조류독감(Avian Influenza)
이스라엘 한적한 기슭에 자리한 감람산 정상. 주님은 모처럼 제자들과 함께 시원한 시간을 갖고 계셨다. 한 제자가 주님께 여쭈었다. “주님!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습니까?” 이에 주님은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에 큰 징조들이 있다.” 온역이나 기근은 헬라 원어의 어근이 같다. ‘돌림병, 흑사병’을 의미한다. 이 시대 흑사병은 무엇일까? 인간목숨을 앗아가는 염병이라면 에이즈를 꼽는다. 그러나 21세기 흑사병인 AIDS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묻혀가고 있다. 더 무서운 점염병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조류독감이 그것이다. 세계 제1차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18년. 서반아 독감이라 불리우는 스페니쉬 인플루엔자가 기근과 온역으로 퍼져가며 전 세계를 위협했던 사건은 메스컴을 통해 접한 무서운 일이었다. 1919년까지 1년 어간 2천만에서 4천만의 사람이 조류독감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온역으로 기록 되 있다. 보통 감기정도로 생각했던 서반아 독감에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나 걸렸었다. 당시 미국에서만 67만 5천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이는 1차 대전에서 죽은 미국 군인들의 수보다 10배가 더 많은 숫자였다. 죽음이 두려운가?

빌리의 황혼
2005년 6월 26일 뉴욕대전도 집회를 마지막으로 고별을 고했던 빌리 그래엄 목사(86)는 “회개하고 죽은 뒤에 천당에서 만납시다!”고 외쳤다. ‘죽은 뒤에 만나자’는 노종의 외침은 실언이 아니었다. 그에게 죽음은 참 쉼이다. 시간의 흔적이요 호흡의 마침표일 뿐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당당한 얼굴로 빛을 발하고 있다. 왜 떨림이 없으랴마는 떨리는 가슴에 고동치는 주님의 더 깊은 숨소리로 마음을 가라앉힌 늠름한 기품이 있다. 노종의 삶은 아름다웠다. 쓰다버린 갱지처럼 구겨진 인생이 아니었다. 정성을 다한 정교한 작품으로 삶을 그려냈다. 올곧은 인품으로 차분한 성품으로, 훈훈한 인정으로 참 삶을 이어왔다. 빌리의 황혼은 늦가을 저녁노을 길게 드리운 황금들녘의 물결이었다. 북풍실바람에 알알이 실한 알곡들의 흔들림은 천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영혼들의 춤사위처럼 노종의 백발은 흩날렸다. 참 죽음. 웰 다잉(Well- Dying)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참 따뜻하고 듬직했다.

두 손 모으고
가진 것이 부족해도 지혜롭게 살아가자. 배움이 적어 전문인은 아니나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당당하자. 무던하면서도 부지런하고, 내 것을 내 것이라 우기지 않는 넉넉한 마음으로 나누며 살아가자. 가난하나 지혜로운, 보아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함이 있으나 우직하고 끈기 있게 깨닫게 하실 내일을 기다리자. 남루한 옷차림에 장애를 지녔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의 이웃으로 살아가자. 마른손 들기에도 굳어진 발 떼기에도 미려하나 미소를 잃지 않는 순수함으로 어둠을 무르고 세상을 밝혀가자. 강함은 부드러움으로 약함은 든든함으로 어깨를 내어 주는 동무가 되어주자. 옛말에 배꼽에 두 손 모으고 드러누울 때까지 남 잘못은 꾸짖지 마라했다. 자기 허물이 더 크다고 여기라 했다. 나날이 쇠하여가는 덧없는 인생인데, 살아야 할 남은 날들만큼은 제대로 잘 살아보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5-16)

 

최순철 - 11/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