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에 속한 사람들

아이 엄마의 눈물
내 어릴 적 살던 시골집엔 마당을 사이로 네 가옥이 얼굴을 맞대고 살았다. 사는 형편과 처지가 비슷했기에 서로를 위안 삼아 한 가족처럼 지냈다. 어느 집엔 단칸방 하나에 삼대가 함께 했다. 한 우물에서 나누는 아침인사엔 서로의 아버지였고, 서로의 어머니였고, 서로의 형제 자매였다. 그런데 그중에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어려운 가정이 있었다. 막 시집 온 새댁이었다. 그 집엔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가 있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아이였다. 그런데 돌이 지난 아이가 이상했다. 말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뇌성마비였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한 우물 네 가족들의 가슴까지 함께 무너졌다. 가난했어도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부부의 얼굴엔 생기가 사라졌다. 날마다 먹구름이었다. 싸움이 잦아졌다.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처마 끝자락에 걸터앉아 우는 엄마의 흐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 엄마를 도울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몸은 더 이상 변화가 없었고 앞으로 사는 날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태어남과 성장과 성숙함에 이르는 과정이 있다. 누구나 영적인 유아기가 있다. 그러나 영적 어린아이 상태가 여러 해 동안 지속된다면 영적 뇌성마비와 같다. 병적 유아상태에 처한 사람의 증세를 가슴에 새기고 자신을 점검해보라. 신앙생활에 변화가 있는가? 회심의 눈물이 있는가? 영혼구원에  대한 성숙한 간절함이 있는가?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는가? 죄에 대한 반복적인 실패를 자주 경험하는가? 육에 속한 자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종종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 눈물이 마르기 전에 죄의 유혹에 쓰러지고 만다. 죄에 대하여 이긴 경험이 희미하다. 죄와 싸워서 이기려는 결심을 주저한다. 실패를 전혀 하지 않을 순 없으나 빈번한 실패만 있을 뿐 실패를 통해서 영적인 성숙과 거룩한 삶의 진보가 없다. 그리고 신령한 은혜의 세계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는 이들이다.

하늘의 군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겐 희망이 없는가? 희망이 있다. 신령한 세계에 이를 수 있는 비결이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으로 탈출하는 비결이 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가 하늘의 군대가 된 역사를 보라. 그 비결은 복음에 대한 감격에 빠져드는 것이다. 십자가의 생기가 담긴 말씀에 자신을 빠뜨려야 한다. 굳어진 마음을 움직이는 비결은 성령의 생기이다. 누구나 한두 번쯤 침체에 빠질 때가 있다. 엉킨 실을 풀 때에는 ‘실마리’가 중요하다. 실마리만 찾으면 나머지 실을 푸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패배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불타는 심령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복음을 만나라”는 것이다. 이것은 평범하면서도 강력한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일하신다. 말씀을 들을 때 내안에 생기가 운행해야 한다. 그래야 ‘은혜’를 느끼게 되고, 은혜를 느끼기 시작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격에 이끌리어 자신의 삶을 불태우게 되리라.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

 

최순철 - 11/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