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을 지우는 산울음

산울음
산이 운다. “우르릉 우르릉” 산속 깊은 곳에서 꾸물꾸물 들려오는 산 울음소리. 산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들려주는 자연의 울음이다. 지각이 변동하고 지층이 찢어지는 가슴 아픈 소리이다. 산울음이 계속되는 동안 사태가 일어날 조짐을 아는 들짐승들은 자연의 계시를 알아듣기에 자리를 피한다. 밤새도록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이윽고 태산을 ‘와르르’ 무너지게 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었다. 그러나 기나긴 시간을 두고 울고 또 울어주는 산울음은 어느 정점에서 태산을 무너뜨린다. 어제까지 그 자리에 있던 태산이 오늘은 없다. 이것이 태산도 지워버리는 산울음이다. 기도의 역사도 산울음과 유사하다. 기나긴 시간을 두고 울고 또 울고 부르짖으라. 지금 당장 태산 같은 상황과 골리앗 같은 두려운 현실이 날 짓눌러 숨조차 쉬지 못하게 할지라도, 한 땀 두 땀 계속해서 부르짖는 끈질긴 기도로 자신과 한바탕 싸워보라. 그대가 흘린 한 방울 한 방울의 땀들이 당신의 상황의 뿌리 속에 스며들어 태산도, 골리앗도 지워버릴 것이다.

기도의 승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승리를 이끄신 주님에게는 먼저 겟세마네동산의 기도가 있었다. 주님은 건성으로 기도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아버지와 교통하셨고, 온 맘과 온 몸을 다해 기도하셨다. 십자가를 바라보셨기에 무릎을 꿇으실 수 있으셨다. 십자가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들은 번잡하고 바쁜 일과 속에서도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해 한적한 시간을 확보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을 때보다 한적한 자연 속에 있을 때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 질수 있다는 비밀을 터득한 것이다. 십자가의 정신은 고독한 시간을 두고 아버지와 교제에 집중했던 기도의 정신이다. 기도는 마음의 노동이다. 세상 것들로 가득한 마음으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기도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자기마음을 다루어야 한다. 죄악으로 무너진 마음이 먼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로 정결함을 얻을 때 비로소 마음이 하나님께 정복되는 것을 경험한다.

거룩한 용기를 갖자
거룩한 교회의 소명을 다하기 위하여 잠시 세상의 즐거움을 버릴 용기를 지녀야 한다. 보다 영원한 나라의 임하심을 위하여 세상들로부터 소외당할 용기를 회복하자.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골고다의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시기 전에 먼저 영적으로 승리하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었다. 지금이야 말로 기도의 용사가 필요한 때이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어야 할 때가 이미 이르렀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라. 기독교가 위기라고 느낀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한 때에도 언제나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계신다. 피 묻은 복음에 가슴을 울리는 사람들. 십자가의 보혈에 마음을 찢는 사람들. 다가올 환난을 기대하면 오늘을 무릎으로 살아가며 태산을 지우는 산울음의 사람들. 저들과 함께 하자. 저들과 만나자. 그들이 노니는 한적한 기도의 세계에서 주님과 함께 내일을 준비하자.

“예수께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눅22:39-44)

최순철 - 11/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