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설교 은혜로운 설교

설교 홍수시대
설교는 이렇게 들어야 합니다』의 저자 제이 아담스는 21세기를 설교 홍수시대로 보았다.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다했던가? 아무리 많은 설교를 들어도 성도들의 영적갈증을 해갈해주지 못한다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복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능력이다. 성령의 불을 붙여야만 가슴에서 뜨거운 폭발이 일어난다. 성도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찾아 움직인다. 설교는 신앙생활에 아주 중요한 요소다. 설교만이 하나님의 방법이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설교를 통해서 일하신다. 설교의 영광이 가려지면, 복음의 능력과 교회의 영광이 사라진다. 종교개혁시대 이전 교회는 설교의 능력을 무시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교회가 무시되었다. 설교의 영광을 도외시하지마라. 설교 이외의 것에 매달리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이다. 그래서 진정한 부흥은 항상 설교자의 부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여전히 설교라는 방법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주신다.

설교의 능력을 위한 기도
설교자는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한다. 능력에 덧입혀 전해야 한다. 아담스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은 씨의 문제가 아니라 밭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풍성한 열매는 씨(말씀)의 문제나 농부(설교자)의 문제가 아니라 밭의 문제라는 것이다. 밭의 상태에 따라 열매가 다르다. 그러므로 좋은 밭이 되기 위해 각성하라. 에덴동산의 범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었던가? 아니다. 들음의 문제였다. 잘못 들은 것이 문제였다. 설교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설교자뿐 아니라 듣는 사람도 준비가 필요하다. 아담스는 설교를 듣기 위해 먼저 준비해야 할 것과 취해야 할 태도, 설교 경청을 방해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물리치라 충고하고 있다. 설교를 듣기 전에 설교자가 능력에 입혀져 전하기를 위해 기도하라.

옥토같은 자세로
스펄전은 “유익을 얻으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한 유익되지 않은 설교는 없다”고 했다. 잘 듣고 싶은가? 듣는 것을 통해서 생명을 느끼고 싶은가? 옥토와 같은 자세로 듣고 싶은가? 그럼 설교를 잘 듣는 길은 무엇인가? 첫째,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 듣기 위해서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남자 분이 억지로 교회에 끌려 나왔다. 아내 기사 노릇하다가 이제는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두 달 가까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설교였는데, 요즘에는 알아듣는 설교를 하십니다. 설교가 많이 달라지셨어요!” 그때 목사님은 “제 설교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성도님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둘째, 간절한 기대감이다. 태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성경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행17:11)라고 말한다. 기대감이 있어야 잘 들리게 된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는 한가지에만 신경을 쓰라.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말씀은 무엇인가?” 어린아이다움이 있어야 한다. 순수한 마음, 열린 마음이 있어야 들리게 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최순철 - 01/2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