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왕따의 눈

한계를 뚫고 나가는 리더
한계는 넘어서기 위해서 다가오는 것이다. 한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상황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한계는 나를 한계 넘어의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라. 여성 경영주로서 한계를 뚫고 나가는 인상을 주는 사람 김성주씨는 자신의 저서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에서 말하고 있다. 대성그룹의 막내딸로 태어났으나, 배경에 연연하지 않고, 고뇌하는 소크라테스, 도전하는 야생마가 되기를 원한 사람이다. 그녀의 주장에는 탁상공론이 없다.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땀 냄새가 있으며, 가진 자의 책임을 느끼는 부분에서는 강한 공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여성이다. 진정한 여성의 각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자극도 있다. 한 분야에서 터부의 한계를 넘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탕이 강한 사람
그녀는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블루밍데일스의 총수인 마빈 트라우브 회장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 회사에서 가장 편한 사람은 수위이고, 가장 힘든 사람은 회장이다. 이것이 그 회사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바탕이 허약할수록 화려한 치장을 한다. 그녀가 앰허스트 대학을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 교수의 강의를 거의 그대로 외워서 썼다. 만족한 답안을 내고 A학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B학점이었다. 교수에게 항의했더니 교수 왈, “그것은 내 생각이지, 자네 생각이 아니잖아!”였다고 한다. 독창적인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은 과거를 배우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미래를 감당하는 새로운 도전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식 교육은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거룩한 왕따의 통찰력
문제를 푸는 능력을 기르라. 무엇을 배우든지 배움에 발전이 있는 곳엔 언제나 사실과 직면하고, 문제와 직면하는 현장이 있다. 거기에 성장이 있다. 진리는 책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장을 사랑하라. 진리의 보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목회 현장이나 목장 현장이나, 인간관계의 현장속에서 직면하는 현실을 넘어서면서 성장한다. 현장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살아 있는 오늘이 느껴지고, 행복한 내일이 만들어 진다. 시간낭비에 가슴을 치라. 직무유기에 피눈물을 쏟으라. 세례 요한이 처한 고독한 한계상황이 암울한 400년의 침묵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다. 무식한 반항아가 아니다. 거룩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신령한 왕따였다. 요한의 통찰력을 지닌 왕따가 있었기에 그리스도의 새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운 왕따가 필요하다. 로뎀나무 아래 은혜를 따르고, 진리를 따라 달려가는 왕따들이 있기에 우리는 잃었던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마3:1-3)

최순철 - 02/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