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묵이면 바보가 된다

라스베가스의 야경은 실로 불야성을 방불케 한다. 밤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가슴을 흥분케 한다. 밤을 낮처럼 돌아다니게 만든다. 허나 그 밤거리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도 정상인은 없다. 모두가 비정상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이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생명이 없다. 죄악이 가득한 도시는 멍하다. 그곳에서 생업을 하는 사람 역시 멍하다. 왜 그럴까? 죄에 묵여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고, 생기가 없다. 비단 라스베가스뿐만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오십보백보이다. 거기에 개인의 차이에 따라 더하다. 온통 경건의 모양은 상실된 도시이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역사속에서 일어났던 영적 각성의 시기를 보면 말씀이 강력해질때 도시가 경건해졌다. 미국 대각성운동, 영국대각성운동등 영적대각성은 당시 도시와 문화를 완전히 새롭게 했다. 술집이 문을 닫았다. 길거리 사람들이 사라졌다. 하나님앞에 죄인임을 고백했고, 더 이상 죄인으로 살지 않기를 선포했다. 말씀과 경건의 세력이 강화될때는 거룩한 문화가 승하였다.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오염된 시기에는 영혼들이 몰락하고 저급한 문화와 세속화된 사상이 팽배했다. 왜 그런가?

성령은 생각에 영향을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이 함께 하면 이성이 자극받는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게 되고. 똑똑해진다. 베드로는 원래 학문 없는 평범한 범인이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이후 사람들이 그의 지혜에 대해서 놀랐다. 성령이 이성을 자극하고 생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죄를 지으면 이성이 마비되고, 어리석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를 지으면, 생각하기 싫어진다. 왜? 자꾸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고, 죄의식으로 인해서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자꾸 생각나면 스스로 생각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한다. 죄와 술이 같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짓을 술도 안먹고 어떻게 해요?”  술없이 어찌 죄를 짓느냐는 말이다. 왜? 죄의식을 이기면서 죄를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의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너무 나도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본다. 어떻게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 저런 어리석은 결정을 할까하고 의구심이 생긴다. 그런데 왜 그것이 가능한가?  죄 지을 당시에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을 마비시키고, 생각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밧세바와 범죄한 이후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회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은 그의 생각을 자극시키신다. 그리고 회개케 하신다. 이것이 복이다.

왜 정결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그래야 치열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자유로울만큼 깨끗한 인생을 살아야 지성과 영성의 발전이 있다. 죄는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반면에 회개는 우리의 진로를 더 빠르고 강력하게 만든다. 죄를 즐기면 바보된다.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하라.

최순철 - 10/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