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언덕에서 배우는 하나님

한계를 넘는 고통 속에 버려두실지라도 염려하지 마라

어릴 적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강물에 들어간 적이 있다.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오금이 저려왔고, 무서웠다.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키가 충분히 크셨기 때문이다. 그 정도 깊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아빠와 나의 차이였다. 나는 얕은데서만 놀려고 했다. 왜냐하면 거기가 자기 수준에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들어가라고 하실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베다니 동네에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라 이름하는 삼남매가 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아주 사랑하시는 가정이었고, 저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이 특별했던 가정에 큰 어려움이 닥쳤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온 가정이 강물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했다. 이 자매들은 예수님께 소망을 두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은혜를 주신다는 믿음이었다. 많은 경우에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늘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를 어렵게 만든다. 때때로 고통 속에 빠진다. 어려움을 당한 성도를 죽기까지 사랑하신다 말씀하셨던 주님이 그 성도를 죽을 지경이 되도록 까지 버려두실 때가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은 아주 작은데, 주님은 그 한계를 훨씬 넘는 고통이 임하도록 버려두실 때가 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었다.

마리아의 믿음은 주님보다 죽음을 더 크게 보는 정도였다. 주님도 죽음의 한계 안에 갇혀 계시는 분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한계 너머에 계셨다. 자매들은 생각하기를 나사로가 죽는 일만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죽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악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악한 일 그 자체가 고통스럽고,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을 사용하시고, 고통을 사용하시고, 불같은 시험을 사용하신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한계속으로 인도하신다.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시려는 것이다.

최순철 - 10/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