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의 그윽함에서 침묵을

송연묵과 유연묵

어느 고풍스런 레스토랑 벽면에 걸린 한 폭의 묵화가 눈에 들어왔다. 천년을 지내도 그 향을 잃지 않는다는 먹의 향이 코끝에 은은히 살아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붓글씨 시간에 접해본 묵향이 고작인데 오늘은 제법 나이든 척 그윽한 눈빛으로 그림 속에 담은 화가의 눈을 따라 자연 속으로 펼쳐진 봄의 푸르름과 물가의 시원함을 맛보았다. 색조가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 부드러움과 은은함은 봄의 향기를 더욱 자아냈다. 먹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소나무를 태워 나오는 그을음을 모아 아교풀로 개인 다음 삼 만에서 십 만 횟수로 절구질을 하여 만드는 것을 송연묵(松煙墨)이라 하고, 참기름, 비자기름, 오동기름등을 태운 연기에서 채취한 것을 유연묵(油煙墨)이라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을음의 분자가 연통의 높은 곳에 붙어 있는 것일수록 상제의 품질인 것이다. 즉, 그을음 분자가 작고 고울수록 그 향 내 음이 진하고 상질의 먹이 된다. 소나무와 기름의 그을음이 먹의 주재료였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화선지위에 쓰여 진 묵서나 그려진 묵화는 천년을 지나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그을음이 모여 만들어진 묵향의 그윽 함속에서 생각해보았다.

묵향의 그윽함에서 침묵의 소리를

묵향의 그윽함에서 침묵의 소리를 들었다. 요즘은 너무나 움직임이 빠르다. 변화가 빠르다. 속도가 빠르다. 유한한 세속의 가치들이 영원한 가치의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다. 작품보다는 상품이 더 즐비한 세상. 평안보다는 불안이 더 득세하는 현실. 화목함보다는 다툼이 더 자연스러워져 가는 문화 속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침묵이다. 침묵은 흩어 진 마음을 모아주는 정적이다.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함께하는 다른 이의 마음에도 좋은 생각을 담아준다. 공허한 마음에 평강과 안돈을 심는다. 마치 잔잔한 호수의 정적 속에 비친 또 다른 세상의 모습처럼 침묵은 세상을 아름답게, 사람을 아름답게 가꾸어 준다. 묵향의 그윽함에서 삶을 되새김하듯 침묵은 자신을 깊은 곳으로 인도하는 비밀한 문이다. 마음을 살리고 담백한 영성의 길을 가려거든 많은 말을 내뱉기보다 마음에 담는 훈련을 해보라.

가슴을 열고 심비를 드리라

묵향의 그윽함에서 빛의 따뜻함을 느꼈다. 석(石)벼루 모퉁이 물에 자신을 갈아 만든 먹물 속에서 인생의 어둠을 보게 되었다. 외롭고 고독한 이민생활이 때로는 먹물처럼 밑도 끝도 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득한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처럼 절망의 어둠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러나 묵향의 그윽함이 천년을 가듯 어둠을 통해서 인간은 향기로운 내일을 만들어 낸다. 천년을 흘러 뜻을 전하고, 천년을 넘어 그림을 담아내는 묵향처럼 인생의 가치를 전하고, 영원한 미래를 담아낸 사람들 모두 먹물같이 어두운 밤을 지내온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 모두 묵향의 그윽함에서 침묵의 비밀 깨달은 것처럼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다루시는 주님의 침묵 속에 담긴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자. 아니 가슴을 열고 심비(心碑)를 내어 드리자. 시내산 돌판에 새겨주시던 그 불필로 내 가슴에 인장을 새겨 주시도록 옷깃을 여미러 드리자.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자. “주여! 저로 하여금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주님의 편지되게 하소서!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3:3).

최순철 - 01/2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