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얕으면 어깨동무라도 해라

원주민 인디오 주거지

워싱턴 D.C 를 품에 안은 버지니아. 원주민 인디오들이 모여 살던 주거지중 가장 큰 무리를 이루었던 곳이라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진 그들이 주거지로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미동남부 대서양지역에서 발원하여 오르는 태풍들이 번번이 버지니아만은 피해갔었다. 그런데 2003년 9월 18일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버지니아를 방문한 토네이도는 90년만의 바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사벨. 그 후 태풍의 피해가 빈번해졌다. 이사벨의 칼을 피해 도망치다 브엘세바 광야 로뎀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처럼 한 아름의 거목들이 맥없이 푹 푹 쓰러졌다. 시원한 그늘을 주던 친구 같은 나무들. 그들이 오늘은 바람과 더불어 인간을 위협하는 채찍으로 다가온다. 차창 밖으로 여기저기 널 부러진 나무들. 뿌리 밑까지 수치를 드러낸 나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다리를 움츠린다.

뿌리 깊은 사람

사람을 일컬어 뿌리 깊다 할 때는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 공동체의 소속감과 주인의식이 분명한 사람을 일컫는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초지일관하는 사람이다. 자기 고집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뿌리 깊은 사람을 대할 때 느낌은 우선 든든함이다. 믿음직스러움이다. 기대고 싶은 견고함과 포근함이 함께 어우러진 인품이 삶 속에 베어있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큰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은 인생의 굴곡이 느껴짐에도 의미 없이 떠버리지 않는다. 자신과 싸움에서 경건을 지켜낸 사람들이다. 그들의 얼굴엔 은빛의 은은함이 있어 함께 한 사람들에게 미더움을 준다.

뿌리깊은 나무의 과거

뿌리 깊은 나무도 과거는 있다. 짤막한 뿌리로 철없이 까불던 어린시절. 살바람이라고 덤볐다가 휘청거리며  낭패를 당했던 시절. 모진 눈보라에 꽁꽁 얼어붙고 비바람에 숨 못 쉬며 물먹은 가지 찢어질까 낑낑댔던 그 날들이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총총히 새겨진 나이테마저 감추어버리고 그냥 그렇게 묵묵히 서 있는 뿌리 깊은 나무에게서 우리는 한수 배워본다. 본질적으로 뿌리가 짧고 얕은 나무도 있다. 사계절 자연의 변화에도 거뜬히 생존하는 북가주의 붉은 나무(RED WOOD). 거친 표피도 없이 드러낸 속살이 붉은색을 띄고 있어 일명 레드우드라 한다. 레드우드는 수십 미터짜리 키에 비해 뿌리가 아주 얕다. 그렇지만 가뭄과 비바람에도 불안전한 토양과 땅을 진동하는 지진 속에서도 결코 쓰러진 적이 없다. 땅속 어두운 곳에서 서로 어깨동무하며 엉켜있는 뿌리들의 상호의존 때문이다. 하나여야만 되는 생존의 현장에서 붉은 나무의 뿌리들이 외치고 있다. “뿌리가 얕으면 어깨동무라도 해라!”

에베소서 4장 13-16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최순철 - 0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