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과 목마름으로 살라

바울은 이미 오래전에 완성된 십자가의 사건이 여전히 그의 삶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거듭났던 그날부터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달려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사건이 자신의 영적인 삶속에서 날마다 다시 체험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죠나단 에드워즈는 “성령의 증거는 단 한 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반복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경험한 십자가의 사건에 대한 감격은 순교의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체험한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은 그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격에 사로잡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도 바울처럼 십자가의 은혜가 반복되게 할 수 있을까요?

첫째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육체 가운데”산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우리는 여전히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죄의 요소들과 더불어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웬은 “죄와 더불어 싸울 때 우리는 죄를 미워하는 격렬한 감정으로 투쟁하듯이 물리치지 않으면 안된다.”그렇게 투쟁할 때 우리 영혼은 활기를 얻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십자가의 능력을 현재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몸부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죄와 그 습성에 따라 옛사람으로 돌아가려는 성질과 싸워야 합니다. 욕심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은 얻었지만 저절로 거룩한 삶이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삶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둘째 메마름이 아니라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메마름과 목마름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메마름은 가시를 만듭니다. 사막에는 온통 가시 선인장뿐입니다. 원래 잎사귀였던 것들이 메마르게 되어서 가시가 된 것입니다.  메마름은 재앙이다. 메마름이 가시를 만들어 나를 찌르고, 남을 찌르게 됩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8:14) 염려하면 심령이 메말라집니다. 염려가 반복되면 심령이 마르고, 날카로워져서 공격적인 사람이 됩니다. 염려의 반대는 기도입니다. 염려하면 가시가 되지만, 기도하면 가시가 변하여 잎사귀가 됩니다. 우리 주변에 가끔 선인장같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너무 날카로워서 대화가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염려 때문에 심령이 메말라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매마른 심령을 어떻게 하면 촉촉하게 할 수 있을까요? 바위 위에 떨어진 씨가 ‘습기가 없어서 말랐다'(눅8:6)고 했습니다. 습기가 있어야 부드러워집니다. 수분이 들어가면 부드러워집니다. 습기는 은혜에 대한 목마름을 통해서 흐릅니다. 고난속에서 흘리는 피와 눈물과 땀이 가슴을 적십니다.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깨진 마음으로 회개할 때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2009년 추수감사절에 눈물로 가는 십자가의 추수행렬에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최순철 - 11/2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