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터 30.38 에이커의 일지(3)

제가 처음 경험한 성전건축은 군대에서 였습니다. 1983년. 강원도 고성군 학야리에 위치한 보병 제 22사단 사령부 군종병으로 근무할 당시 55연대 교회와 56년대 교회 그리고 사령부 전진교회가 건축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국방부 예산에서 지원받고, 지역교회에서 후원을 받은 4억 3천 만 원의 예산으로 신개념 군종센터(교회, 성당, 법당이 한 건물 안에 들어 있는)를 전군에서 처음으로 설계되어 세워졌던 것입니다. 당시 4월 초파일이면, 법당에서 연꽃을 만들다 밤을 지새우며 손톱에 붉은 물, 노란 물, 초록 물로 얼룩도 저보고, 군종장교 신부가 미사를 집례하면 옆에서 미사집전 심부름을 해야 했습니다. 센터로 들어오면 오른쪽은 교회(11시)와 성당(2시)으로 사용되었고, 왼쪽은 불상을 중심에 두고 법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현실에 적응되었고, 나름대로 도전과 응전의식도 갖게 되었습니다. 더욱 교회 부흥에 대한 각오도 생겼던 시절이었습니다. 전방의 12월은 요즘처럼 백설이 가득한 겨울밤 들판에서 보초를 서는 전우들의 차가운 손발을 녹이고, 시려진 가슴을 위해 자정 12시면 찜통에 하얀 찐빵을 가득히 담아 스팀으로 대펴서 뜨끈뜨끈한 생강차와 함께 2,3킬로에 걸쳐 10여개의 초소를 매일 저녁 방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이곳 버지니아에서 교회 개척 15년 만에 다시금 하나님의 집을 지어가려 하니 가슴이 벅차고 마음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2004년 7월경. 교회가 구입한 성전 터 조사를 위해 선임된 엔지니어(Greenhorne &O’Mara,Inc)가 조사를 해가는 과정에서 생긴 유대인학교와의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계약 조건은 유대인 학교진입로를 사용토록 허락하는 것으로 2만 불을 지급받고 유대인 토지의 일부 좋은 토질의 땅 1.5에이커를 우리 땅과 바꾸는 것을 구두로 계약했습니다. 당시 주고 받았던 계약의 조건을 담은 전자 메일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인측은 변호사가 선임되어 일하고 있었고, 교회는 경험이 전무 했던 터라 토지관계의 계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약속만 믿고 넘겨 주었던 도로 사용권 이후 유대인학교 교장이 바뀌면서 구두 약속했던 내용을 이행할 수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교회로서는 커다란 낭패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유대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저로서는 너무도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들의 억울한 사정을 보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 일을 통해 선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할렐루야.

최순철 - 12/1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