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와 두려움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영원과 하루’라는 글이 있다. 어느 날 미드웨스트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에게 응급환자를 후송해 오는 직원에게서 다섯 사람이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오는 중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도착한 응급환자 중 한 사람은 바로 간호사의 남편이었고, 다른 네 사람은 모르는 일가족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다섯 명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사고원인을 추적하던 조사팀의 발표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죽음의 원인은 화에 있었다. 분을 참지 못하고 일으킨 화가 죽음을 불렀던 것이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차 한 대가 시골길에서 앞 차를 추월하려고 했다. 그러나 운전자들은 서로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잔뜩 화가 나 그들은 바로 옆에서 나란히 차를 달리며 서로를 추월하려 했던 것이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그 운저자중의 하나가 간호사의 남편이었다. 운전자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서로에게 화낼 이유고 없었다. 단지 앞지르려 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을 ‘화’로 꼽는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화가 난 상태에서 운전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두 운전자의 경우처럼 화가 쌓이게 놔두면 화는 부정적인 힘으로 돌변할 수 있다. 우리는 화에 지배당하기 전에 우리가 그것을 다스릴 수 있도록 화를 푸는 법을 배워야 한다. 풀어내지 않고 억압된 화는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침전된다. 그렇게 쌓여가는 화는 대개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게 된다. 화가 쌓이도록 방치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게 된다. 화의 감정은 사람이 가진 여러 감정들 중의 하나이다. 화는 경험해야 할 감정일 뿐 판단의 대상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느끼는 감정과 솔직하게 접촉해야 한다. 화를 풀어내어야만 진정한 자기 대면에 이를 수 있다. 화를 안으로 삭일 때 그것은 종종 우울증이나 자기 비난으로 표현된다. 안으로 억눌려진 화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바꿔 놓으며, 현실을 보는 관점을 왜곡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화라는 감정에 넘어지는 것인가? 두려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 그것은 화로 변한다. 그 화를 처리하지 않으면 심한 분노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화를 내는 데 더 익숙하다. 두려움은 화로 통하고, 화는 두려움을 불러드리는 통로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약속을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을때, 지키지 않는 약속은 왜 했나? 화가 난다. 화가 일어나면서 두려움을 끌어들인다. 그 두려움은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내가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졌고 두려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와 두려움의 상관관계를 차단하고 이 두 감정 사이를 통해서 오히려 더욱 스스로를 견고히 하고 굳건한 자아를 세워갈 방법은 없을까? 있다. 화와 두려움의 감정을 사람에게 쏟아놓기 전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마치 화풀이 센타같은 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대면하라.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스스로를 인정하고 “나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다”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라. 그러면 평화가 찾아 들 것이다. 사람에게 하지 말고 허공 속에 날려 버려라.

최순철 - 02/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