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것에는 훈련이 있다.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라는 말씀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그 1983년 어느 봄날. 때는 강원도 고성 소재 육군 22사단 군종실에서 근무할때였습니다. 군복무를 하면서도 매일 새벽예배를 인도하며, 매주 금요철야기도를 인도했던 경험은 지금도 가슴 따뜻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예언서와 성경적인 종말신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동안 500여권의 전문서적을 탐구해오며, 각종 세미나와 강좌를 통해 마지막 시대에 대한 성경의 숲을 보려고 노력해 왔고, 그 수고는 이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도 요한이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계2,3장)중에서 특히 사데교회는 하나님을 크게 실망시켰던 교회였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또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느니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귀의 권세도 물리칠 힘과 권세가 두르고 있는 교회가 이토록 무기력하게 추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데교회가 그토록 힘없이 쓰러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받았던 말씀을 마음에 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지 않고,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며, 말씀대로 삶을 고쳐갈 수 있는 자리까지는 가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배우든지 가르치든지’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현실적은 조건 때문에 활발한 움직임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전 교우들이 영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면서도 상호책임적인 관계를 구축해서 영적 아비를 통해서 배우고, 영적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훈련공동체로 성숙해 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데교회는 바로 이면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이 불가피합니다. 사실 훈련을 좋아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리한 신앙생활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 속엔 성장도, 진정한 변화나 열매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헨리 나우엔은‘훈련이란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공간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임 기너트는 “기독교교육은 인간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설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는 경건의 연습과 훈련입니다. 그동안 예배 처소를 학교로 옮겨 오면서 금요기도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금요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앞으로 금요기도회는 매우 흥미롭고, 흥분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던 영적인 퍼포먼스들을 하나 둘 꺼내보려고 합니다. 도시와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중보기도와 이웃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획기적인 섬김과 사귐을 동시에 펼쳐가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찬양과 기도로 도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속에 찬양과 기도로 채워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도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삶에 성령을 흐르게 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하여 함께 해 주신 사랑스러운 여러분들에게 저는 조금 더 힘을 내라고 등 떠밀고 있는 것입니다. 힘이 들수록 버릴 것은 확실하게 버리고, 붙잡아야 할 것은 확실히 붙잡고, 붙잡혀야 할 그분께는 더더욱 꼼짝없이 붙들려 가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진정 사는 길이고, 되는 길이고, 미래에 은총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최순철 - 02/2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