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끝자락에서야 털어 놓는 빌라도의 독백

저는 이탈리아 중부 지방 본디오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고향은 로마 제국에 충성스러운 전사들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서 꽤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저 역시 용사로 길러졌고, 로마군대의 탁월한 지휘관으로서, 전투마다 승전보를 울려온 충실한 선봉장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투에서 거둔 전리품을 상관들과 나누고 부하들에게 베풀면서 사람을 얻어 갔습니다. 머지않아 저에게는 탄탄한 인맥이 형성되었습니다.

서기 26년, 저는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유대 총독으로 임명받았습니다. 로마에 의해 집정되고 있던 수 십 개 국가 중에도 가장 특별지역이 유대땅이었습니다. 민족성이 달랐습니다. 독특한 신앙심 때문으로 매우 까다로운 곳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잘하고 싶었습니다. 위로는 로마 황제에게 신임을 얻고, 아래는 유대민족의 존경을 받고 싶었습니다. ‘권불십년’이라 했지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저의 화려했던 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0년 만에 총독에서 밀려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다 가진 줄 알고 기고만장했던 시절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물러나니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이상 나를 찾는 이도 없습니다. 나는 이미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제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오히려 더욱 생생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제가 총독에 임명된 지 4년이 지나갈 무렵. 그러니까 서기 30년 어느 날. 그 해 유월절에 만난 한 유대청년에 대한 기억은 생생합니다. 그날 새벽. 그러니까 나사렛 예수가 저에게 끌려온 그날. 그날은 몹시 음산한 날이었습니다. 군중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그 가운데 몇 몇 사람의 얼굴만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들은 예수와 같은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온 세상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불과 몇 초였지만 그토록 기나 긴 시간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이미 그의 눈길 속에 삼켜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 속에서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안돈을 느꼈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좇아 살았던 내 가치관이 산산조각 난 듯 했습니다. 그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고 이 나라를 다스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군중들은 그의 죄를 고발했지만, 제가 확인한 바로는 그는 확실히 무죄였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짧지만 진지하게 답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내영은 도전을 받았고, 저에게 그의 나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의 눈빛을. 그리고 그 느낌들. 진즉에 그의 초청에 응하여 그곳에 가지 못한 것이 지금 이렇게 후회스럽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아직도 그 결정의 시간을 선택할 순간이 남아 있기에 부럽습니다. 만약 저에게 여러분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독의 자리에서 내려가 스스로 그를 따라 나설 것입니다. 열두제자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문간에 서서 잠을 자도 좋겠습니다. 그저 가까이에 머물러 있게만 해 주셔도 행복하겠습니다. 하지만 난 이미 늦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부활하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저 하늘 아브라함의 품에서 그분과 함께 거닐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난 정말 후회하고 있습니다.

최순철 - 04/2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