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두 살 난 삼일정신

2011년 3월 1일은  92주년 삼일절이다. 아흔두 해전. 그러니까 1919년 그날.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포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다. 삼일절은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의 단결을 굳게 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여 이 날을 국경일로 4대 국경일 중의 하나이다.

‘터젓고나 터젓고나 조선독립성 / 십년을 참고참아 이졔 터젓네 / 삼천리의 금수강산 이천만 민족 / 살아고나 살아고나 이 한소리에’

이것은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시위 군중들이 소리높여 불렀던 노래 ‘독립가’이다. 3.1운동 참여 군중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만든 노래가 바로 독립가이다. 천관우(千寬宇)는 《신세시기(新歲時記) 봄》에서 “3.1 만세는, 풀이로 이해되는 만세가 아니라, 피눈물이 맺힌 만세요, 부르면 잡혀 가고 때로는 살상(殺傷)을 당하는 만세였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된 만세가 아니라, 고을마다 동네마다 제각기 복받쳐 오르는 절규를 이 한 마디로 표현하여 13도 방방곡곡이 부르고 응해서 터져 나온 만세였다.”라고 쓰고 있다.

<3.1절 노래 >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 이 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정인보 작사 / 뱍태현 작곡)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조선민족대표(朝鮮民族代表) 33인

손병희(孫秉熙) 길선주(吉善宙) 이필주(李弼柱) 백용성(白龍成) 김완규(金完圭)

김병조(金秉祚) 김창준(金昌俊) 권동진(權東鎭) 권병덕(權秉悳) 나용환(羅龍煥)

나인협(羅仁協) 양순백(梁旬伯) 양한묵(梁漢默) 유여대(劉如大) 이갑성(李甲成)

이명룡(李明龍) 이승훈(李昇薰) 이종훈(李鍾勳) 이종일(李鍾一) 임예환(林禮煥)

박준승(朴準承) 박희도(朴熙道) 박동완(朴東完) 신홍식(申洪植) 신석구(申錫九)

오세창(吳世昌) 오화영(吳華英) 정춘수(鄭春洙) 최성모(崔聖模) 최 린(崔 麟)

한용운(韓龍雲) 홍병기(洪秉箕) 홍기조(洪其兆)

조선건국(朝鮮建國) 사천이백오십이년(四二五二年) 삼월(三月) 일일(一日)

33인중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었다. 한민족의 얼을 수호하려했던 저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달군다. 조국 해방을 위해 일생을 순국했던 저들처럼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순교정신을 고취하자.

이은상의 “파도처럼 불길처럼”

세월은 흘러 어느새 46년이 지나갔다 그래도 3·1은 언제나 겨레의 혼의 고향

나그네마냥 떠돌다가도 이 날이 오면 마음의 등불 켜 들고 행렬처럼 돌아오는 겨레의 혼의 고향

어두운 역사였기에 거기 눈부신 은실로 빛나고 고귀한 수를 놓은 날 모두들 머리 위에 가시관일랑 쓰고    비 오듯 흐르는 핏속에 붉은 장미 송이송이 웃고 피운 날

그러기에 저 하늘에 별보다 더 많이 뜬 원혼들조차 저 별보다 더 반짝이는 빛이 되어

산에 비치고 물에 비치고 광풍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 되어 겨레의 마음마다에 비치고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그 꺼지지 않는 마음의 등불 켜 들고 겨레의 혼의 고향으로 행진하는 날

그러나 오늘은 우리 가는 길 위에 보랏빛 안개조차 날아 흐르고 발걸음마저 왜 이리 산만하뇨

겨레들아 그 날의 피의 역사를 다시 한번 쓸개마냥 씹어 쓰디쓴 침을 꿀꺽꿀꺽 삼켜 보라

실화 : 시골에서 살 때 디딜방아라는 것이 있다. 절구통 안에 나락을 넣고 발로 밟으면서 쿵쿵 찔 때에 제일먼저 부서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잘 영글지 않는 나락이다. 모판에 종자씨를 뿌려서 모내기를 위해 싹을 낸다. 잘 자란 싹들을 논에 내다가 줄을 띄고 “어이” 하면서 모를 심는다. 그러다 새참이 나오면 왜 그렇게 맛이있는지… 모를 다 심고는 이제 적절하게 물을 넣어주고 빼주고 하면서 벼들이 잘 자라도록 보살핀다. 초가을이 되면 푸른 몸통속에서 벼이삭들이 터져나온다. 이제 나락에 물이 올라오고 벼이삭에 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병충해들이 달라붙고 참새 때들이 찾아든다. 이때 유능한 농사꾼은 참새때를 쫓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병충해를 잡기 위해 약을 뿌려준다. 그러다가 여름 한철 반드시 찾아오는 장마비속에서 숨막히는 생존경쟁속에서 온갖 위험을 견디어 낸 나락만이 늦가을에 열매되어 황금빛깔 알곡으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추수때가 가까울수록 노란색 빛깔은 더욱더 물들어가고 알 알들은 더욱더 속을 채워간다. 한번도 고개를 드는 법이 없다. 큰 바람이 불어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저 속을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바람부는대로 조금씩 미동할 뿐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중에 웃기는 것은 아직도 푸르스름하게 속이 덜차고 익지 않은 가라지들이 딱! 차렷해가지 서서는 바람불면 까불기는 왜 또 그렇게 까부는가? 남들은 다 깊숙히 고개숙이고 말없이 조용할 뿐인데… 농사꾼은 덜익은 가라지 때문에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사정없이 낫으로 나락을 베어버린다. 그리고 탈곡기에 집어넣고 벼알들을 투투둑하고 떨어내버린다. 그리고는 방앗간에 가서 스위치올리고 벼껍질을 까네는 기계속으로 밀려들어갈 때 드르륵! 하는 순간 잘 익은 알곡들은 새하얀 햇쌀이 되어 나오는데, 덜 익은 가라지는 가루가 되어 겨와 함께 저만치 날라가버리고 만다. 그다음에 조금 잘 익은 것들은 반토막짜리 싸래기가 되어 나온다. 이런 싸래기들은 모아서 뭐에 쓰는가? 닭 모이로나 쓰든지 살죽을 쓸때나 사용한다. 절대로 싸래기를 가지고 귀중한 손님의 밥상에 올리는 법이 없다. 그런데 또 한가지 문제아가 있다. “내가 익느라고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 왜 까져! 안 까져! 하면서 끝까지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지 않고 붙들고 늘어지는 ”뉘“들이 있다. 요즘은 뉘나 돌을 걸러내는 기계속에 들어가면 다 골라지지만 옛날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아무리 잘 씻으려해도 어쩌다가 서너개씩 섞여 있던 뉘를 백미와 함께 100도가 넘는 온도에서 삶아도 삶아지지 안는다.

교회안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첫째는 덜 익었으면서도 흔들어 대는 가라지 종자가 있다.

그 다음에는 잘 익어서 고개를 푹숙이고 묵묵히 추수때를 기다리가 추수되어서는 홀랑홀랑 껍질을 벗어던지고 매사에 맛을 제공하는 맛있는 사람들이 있다. 남에게 덕을 세우고 은혜를 더해주는 포근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속은 찼는데, 아직도 자신의 더러운 껍질을 못 벗은자들이 있다. 아직도 꺽어지지 않아서 세상 것이나 자랑하고 잘난척하는 뉘와 같은 자들이 교회안에 있다는 것이다. 껍질이 벗겨지지 않으면 이 사람은 평생 자신을 괴롭히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의 밥상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버림받는다.

최순철 - 03/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