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함 앞에서

가난한 마을 한적한 곳에서

2004년 7월 11일이었다. 아르헨티나 차코라는 가난한 마을. 한적한 곳. 자동차로 몇 십 분이면 한 도시를 가로지를 만큼 작은 곳. 그런 그늘진 곳에 사람을 바꾸는 조용한 움직임을 보았다. 사역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던 호렙의 위상에서처럼 목사에겐 은혜와 영성의 반전이 시작된 고마운 곳이었다. 바위가 터지는 진동이나 나무를 뿌리 채 뽑아 놓을 만큼 큰 바람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나무로 벽을 세우고 함석으로 덮여있는, 이미 오래전 정적의 소리가 끊겨진 기차 길 옆에 자리한 예수 그리스도교회 예배당. 그곳 후미진 작은 사무실 책상위에서 말없이 조용히 뜻을 전하고 소리 없이 방문자들의 눈길을 움켜쥐는 글귀였다.

 

dios es fiel (디오스 에스 삐엘) 신실!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다. 늦가을에 떨어진 낙엽처럼 글귀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화장실에도 신실! 식탁위에도 신실! 의자위에도, 강단 뒤 휘장에도, 그리고 성도들 미소 속에도 신실이 서려 있는 듯했다. 어느새 ‘신실’이란 글귀가 입술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마치 십자가상의 예수를 바라보며 “저는 실론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며 되새겼던 백부장처럼, 우리는 모두 신실! 신실! 신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1400석의 자리에 8천여 성도들이 모여들기에 매일 밤 예배를 드리는 놀라움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작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강단 옆에 쌓인 선물 속에서 신실한 사람들의 마음을 발견했다. 하루 일한 삯 중 일부를 이웃의 필요를 찾아 선물로 나누는 모습. 받는 자의 이름은 있으나 주는 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 왼 손마저 모르게 베푸는 오른손들의 사랑이었다. 신실함이었다. 자연스러움, 평안함 그리고 서로 하나라는 훈훈함을 주는 조용한 섬김이었다.

 

레시덴시아주 차코

아르헨티나 삼십여 주 중 가장 빈곤하다는 레시덴시아주. 그곳 표정 뒤에 서린 넉넉지 못한 환경의 어두움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주림이 그들을, 넉넉지 못한 환경이 그들을, 시대적인 재밋거리들이 그들을 비웃지 못했다. 그들도 갈등의 골짜기에서 아우성치는 희노애락이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고난과 시련을 딛고 서있는 신실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디오스 에스 삐엘’(신실)! 그저 짤막한 글귀였을 뿐인데, 몇해가 지난 오늘도 가슴 깊이 스며드는 햇살처럼 ‘신실하라’ 당부하시는 그분의 음성이 종의 가슴을 더욱 따뜻하게 격려 하신다. 신실하고 싶다. 그분의 신실함을 담아 나와 함께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안돈케 하고  싶다.

최순철 - 0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