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과 희생

누에는 눈이 없다. 앞을 볼 수 없는 대신 촉각과 후각 그리고 미각의 기능을 지닌 아래턱수염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60시간에 걸쳐 고치 집을 짓는데, 한 개의 고치에서 천 오 백 미터까지 실을 만들어 낸다. 고치를 짓고 나서 약 70시간이 지나면 누에는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된다. 그 후 12일에서 16일을 지나 나방이 되어 자신이 토해 낸 알칼리성 용액으로 고치의 한 쪽을 적셔 유연하게 만든 후 뚫고 나온다. 암수가 교미한 후 암 나방은 약 5백에서 6백 개의 누에알을 낳고는 죽는다(동아백과사전 7권 629쪽). 이것이 누에의 일생이다. 누에가 살다간 자리에는 극상품 비단과 영양가 높은 번데기, 그리고 또 다른 수 백 마리의 자손을 남긴다. 자연 미물의 일생에 담아 놓은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되새겨 보았다.

봄볕에 이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면 추억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시골 마당 한 복판에 놓인 멍석위에 마주 앉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다. 놋그릇에 서린 겨우살이 녹을 닦아내고 매끈한 빛 설기를 위해 광내기를 하신다. 한주먹 움켜쥔 볏짚에 물을 적셔 곱게 부순 연탄재로 녹을 벗기고, 부엌 아궁이 가마솥 밑에 남은 재를 모아 광을 내신다. 빛 설은 놋그릇들이 한 줄 높이 쌓여 갈 때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겨울을 지나 숙성된  동치미 국물에 국수한 그릇 말아 먹자면 톡 쏘는 그 맛이 그만이었다. 박 바가지에 거친 보리밥 한 그릇과 한 숨의 열무김치 잘게 썰고 고추장과 참기름 한 술에 비벼 놓으면 잘 차려진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어느 땐 종지에 담긴 간장 몇 술과 참기름 몇 방울도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손길이었기에 맛있는 반찬이었다. 가난했어도 작은 것에 감사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만들어간 정 가득한 가정이었다.

시대는 바뀌어도 삶의 내용은 다르지 않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가정은 언제나 쉼의 요람이었다. 아무리 고단한 일상일지라도 가정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설레임이고, 포근함이고, 따뜻함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가정의 한 복판에 어머니들의 사랑이 추운 겨울 방안 가득 온기를 만들어내는 화롯불처럼 피어올랐다. 이 땅에 어머니는 마지막 호흡이다. 마지막 삶이다. 마지막 울타리이다.

나는 말을 하기보단 듣기를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십대에 들어 ‘의젓하다’는 어른들의 칭찬에 부응하여 얌전해졌다. 교양과 범절, 무게를 지닌 얼굴표정까지 그려갔다. 부모를 떠나 한 가정을 이룬지 28년째다. 내 인생도 어느덧 51년의 세월을 뒤로했다. 이제는 웃는 얼굴로 세상을 대하고 싶다. 서제에는 웃음에 관한 서적들이 한줄 가득히 꽂혀 있다. 성도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노력으로 웃음을 찾아 애를 쓰고 있다. 내가 먼저 웃으리라. 나도 ‘웃게 할 수 있다’ 말하리라. 특별한 방법보단 늘 정직하고 신실한 생활 속에서 진솔한 웃음을 찾아내리라. 주께서 웃으셨던 것처럼, 주와 함께한 수많은 무리들이 웃음의 물결 속에서 춤추며 살아간 것처럼, 천국에서 영원히 웃기 위하여 어제까지는 어머니가 우리를 웃게 하셨기에, 오늘은 내가 웃고, 내일은 나로 인해 이 세상을 웃게 하리라.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장 15절).

최순철 - 08/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