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사도의 편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쓴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다메섹에서 만난 지 언 20여년이 지나가는 시점이었습니다. 젊음과 패기에 넘치던 청년 시절은 지나고, 윤기 있던 피부는 거칠어지고 주름살은 깊어졌습니다. 육로의 위험과 해로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춥고 배고프고 매맞는 고난의 세월을 통해 진액이 쇠하여져 갔습니다. 인생의 황혼 길목에 들어선 노사도 바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에 선 십자가 위에는 20여 년 전에 못 박힌 사울이 달려 있었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그의 속사람은 십자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 그 십자가는 언제나 살아서 그의 삶을 지배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생각하고, 고난의 정신으로 말하며, 희생의 정신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는 이제 세상이나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들을 위하여 사는 길을 끝까지 거절하고, 로마 한적한 골방에서 저 멀리 순교의 종소리가 드려오는 인생의 석양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다시 한 번 확신에 찬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에서 주님이 채찍에 맞으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날카로운 전갈채찍에 맞아 쓰러져 가시는 주님과 그 주님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어머니와 가족들과 다른 마리아와 제자 한 사람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같은 장면 안에 들어온 다른 그림은 이것입니다. 주님의 몸에 채찍을 날리며 희죽거리며 술을 마셔대며 즐기고 있는 사형집행 병사들,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빌라도와 그 무리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핵심 인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검은 옷차림에 얼굴은 회칠한 무덤 같은 색깔에 검은 두건을 쓰고 음침한 눈길로 저들 사이를 오가며 스르륵 스르륵 움직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어둠의 왕 사탄입니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장면인데도 그토록 긴 여운을 흘리고 우리의 뇌리 속에 새겨졌습니다. 저들의 흐름을 멈추는 힘은 오직 복음입니다. 이를 위해 사도는 울고 있습니다.

노 사도의 편지 속에 여기저기 얼룩진 눈물 자국을 봅니다. 조용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울었던 그 자욱. 그리고 무너져가는 고린도사람들의 몸부림을 바라보며 흐느끼며 흘렸던 눈물. 그분의 눈물은 이제 저와 여러분들의 가슴을 치고 세상을 향해 진동케 하는 복음의 고동소리가 되어라 도전합니다.

최순철 - 08/2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