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을 포기할 때

자녀를 위한다는 부모들 가슴 한 구석에는 정체를 감추고 꽤 오랜 시간을 그늘져가게 만드는 쓴 뿌리가 있다. ‘집착’이다. 대게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다. 기대감이 열정을 일으킬 수 있고, 기대감이 지체의식을 불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집착으로부터 오는 현상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집착은 자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게 한다. 자녀만이 아니다. 우리가 희망하고 있는 것들이 대게 잘못된 집착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집착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칼을 들이대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집착하던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포기해야 참 사랑의 관계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착은 좋은 관계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집착은 부모 자식 간을 비본질적인 이유들에 묶어 놓는다. 자녀의 성적이나, 실력, 외모 등 성공을 위해 살게 한다. 하지만 그런 지상 현실주의는 이 땅에 우리를 묶이게 한다. 해 아래 헛되고 헛된 것들로 인해 밤잠을 설치게 한다.

집착은 자신의 비뚤어진 과거의 반응일 수 있다. 그리고 집착은 그릇된 경험으로부터 온 상흔일수 있다. 자녀에게 중요해서 성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이 부족했던 시절의 부모 가슴에 남아 있는 수치심 때문일 수 있다. 좋은 직장이 자녀에게 꼭 필요해서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는 열등감과 쓴 뿌리를 만회하고 싶어서 집착하는 경우가 만다는 것이다.

집착을 내려놓으라. 집착에 의해서 굳어져 가고 있는 마음에 도전하라. 포기를 선언하라. 포기해야만 사랑하는 대상을 하나님의 소유로 볼 수 있다. 아니 포기해야만 하나님의 축복이 어디에 감추어져 있는지 볼 수 있다. 집착은 눈에 낀 들보와 같다. 들보를 낀 채로는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집착을 내려 놓을 수 있는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은 인격적인 관계의 발전이다. 나눔이 있고, 함께 함이 있는 사이이다. 매순간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가 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때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충격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으신다. 그런 극단적인 명령을 하셔야만 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되게 하지 말라. 늘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마음의 중심을 잡아, 하나님의 복을 복으로 지켜가라.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최순철 - 10/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