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장 1-16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들어가는 말> 짦막한 편지를 소개하면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오래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서 미안합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나를… 당신을 이끄는 등대라 불러주던 당신, 그런 당신은 내 앞에 놓인 어둠을 밝혀 주는 촛불이었습니다. 아직도 봄날 반짝이는 햇살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아침 햇살 차창에 뚫고 방안 깊숙이 파고들 듯, 당신의 따뜻한 사랑을 가슴에 가득안고 떠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아들들아… 이제 너희들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너희들을 품에 안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작별할 때가 되었다니… 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좀 더 많은 것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너희들이 준 사랑이 너무 컸기에… 너희들과의 추억이 마음속에 가득하기에 나는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단다…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온 날들이 내겐 축복이었다… 너희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항상 함께 할 것이기에 아버지는 슬픔도, 아무런 걱정도 없단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운 축복이 너희와 함께 하기를 기도할 거야… 너희들을 넘치도록 사랑했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한다!” 2012년 2월 23일. 69세로 세상을 떠난 강영우 박사가 아내와 두 아들 내외에게 남긴 편지입니다.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바울의 드림팀은 총 33명입니다. 이들 중에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9명이나 있었습니다. 젊은이도, 늙은지도 있었다. 귀족도 있었고, 노예도 있었으며, 싱글도 있었고 부부도 있었습니다. 사업가도 있었고,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33명의 특징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뵈뵈자매/ 1,2절에 보면 뵈뵈자매가 제일 먼저 소개됩니다. 뵈뵈는 바울의 심부름으로 로마까지 두루마리 성경을 전달했습니다. 아마도 로마서가 16장이라면 봇짐으로 두 짐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이 무겁기도 하지만 들키면 목숨을 위태롭게 할 위험한 짐을 로마까지 배달하는데 목숨을 건 순종이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 3절에서 5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이들 부부는 사도 바울의 복음증거를 위해서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는 것입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 7절에 보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바울의 친척이었다. 7절 첫 머리에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하였다. 교회 야사에 의하면 스데반이 순교할 때 거기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바울보다 먼저 믿었습니다. 바울을 위해 중보기도했던 사람입니다.

루포와 그 어머니 / 13절에 루포와 그 어머니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루포는 잘 모르지만 루포의 아버지는 유명한 분입니다. 마가복음 1521절에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갔던 시몬의 아들과 부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13절에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그녀가 얼마나 바울의 전도사역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디오와 구아노 / 22절에보면 더디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더디오’라는 말은 셋째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름이 셋째가 될 수 있는가? 당시 로마 사회의 노예들은 이름이 없었습니다. 첫째야!, 둘째야!하고 불렀던 것입니다. 더디오는 노예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23절에는 ‘구아도’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 뜻은 넷째라는 뜻이다. 노예였지만 예수 믿고 바울의 사역에 중대한 도움을 제공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리스도불로와 나깃수, 네레오 / 10절에 아리스도불로와 11절에 나깃수와 15절에 네레오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로마의 귀족들이었습니다. 아리스도불로는 헤롯대왕의 손자였고, 나깃수는 클라우디오라는 로마 황제의 개인적인 비서였습니다. 네레오는 도미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에 황제 바로 아래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훌레비우스 클레멘스의 비서였습니다.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시대에 살면서 위험하게 크리스천이 되었던 존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문안하라는 33명의 사람들은 자신이 비우게 될 그 자리를 매워줄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처럼 추천할만한 사람들, 미더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무엇입니까? 믿고 맡길 사람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소개한 33명의 모습에서 무엇이 미더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였는지 살펴보면서 가르침을 얻겠습니다.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보호자입니다. 2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뵈뵈 자매는 바울과 여러 사람들을 보호해준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돕는 자입니다. 3-4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10절에 아리스도불로와 11절에 나깃수와 15절에 네레오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로마의 귀족들이었습니다. 22절에보면 더디오, 23절에는 ‘구아도’는 노예였습니다. 모두들 목숨을 내어걸고 복음전파을 전했습니다.

셋째, 존중히 여김을 받는 자입니다. 7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는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바울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안에 들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에게조차 존중히 여김을 받은 신앙의 어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름은 오직 여기 한 번, 작은 모퉁이에 살짝 적혀 있다가 지워진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들의 이름이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속에 흔들림이 없는 신앙의 삶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소개하는 미더운 사람들은 보호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도우려는 의식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런 사람이 있을까? 였습니다. 이렇게 믿고 맡길수 있는 미더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입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떠오른 말이 있었습니다. 세가지 요소를 한 몸에 담고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어머니는 보호자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겁니다. 자신은 주리고 목마를지라도 자녀는 먹입니다. 자신은 추워도 자녀만큼은 입혀줍니다. 자식의 위험에 처하면 어머니는 생각할 겨를 없이 뛰어듭니다. 어머니가 그런 분입니다. 어머니에게만큼은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한 어머니를 소개합니다.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13).

자녀를 향한 어머니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미더운 사람입니다. 어머니를 믿고 자신을 맡기는 자녀들처럼 교회는 성도들이 자신의 영혼을 기꺼이 맡길 수 있는 미더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미더운 어머니들이 나옵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을 받으러 들어갈 때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아버지에게 들켰다가는 저주를 받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이때 어머니 리브가가 말합니다. 27:12-13“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가 하나이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미더운 어머니였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미더운 어머니였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오게했던 마리아가 미더운 어머니였습니다. 철장권세를 가진 아들을 낳을 해를 입은 어머니가 미더운 어머니입니다. 이런 미더운 어머니들을 잠언에서는 현숙한 여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현숙한 여인

잠언 31:10절 이하에 “현숙한 여인”을 말씀합니다. 진주보다 더 귀한 어머니라고 소개합니다.

10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3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먼 데서 양식(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을 가져오며

15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새벽시간)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새벽말씀)

16자기의 손으로 번 것(연보)을 가지고 포도원(교회)을 일구며

17힘 있게 허리(진리의 띠로 허리를 두름)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섬김을 강화함)

18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기도의 불, 어두운 밤같은 세상을 낮처럼 빛나게 살아감)

19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옷을 짓기 위한 준비)

20그는 곤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나눔),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일으켜 줌)

21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그리스도의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겨울)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모든 사람들)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평안한 잠. 잠못이루는 일이 없이 함), 세마포(회개와 자기 성찰)와 자색옷(왕같은 제사장)을 입으며

어머니 마음은 어떻게 얻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만 참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자녀를 낳아 보아야 합니다. 한나 어머니처럼 자녀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리브가처럼 축복의 추구점을 70년이 넘도록 야곱을 붙들고 사랑합니다. 이것이 미더운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야곱이 그 나이가 되도록 얌전하기만 했을까요? 힘든 시간, 어려운 시간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기가지 그 모든 시간을 감당해 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성도는 교회를 닮습니다. 교회는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교회는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곳입니다. 신앙적인 가치관이 생겨나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느낌이 미더움입니다. 든든합니다. 믿고 맡겨도 될만큼 미더움이 커져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힘입니다. 복음은 누룩처럼 우리의 가치를 복음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복음의 능력은 변화의 능력입니다. 인간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진정한 복음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강도조차도 변화시켜 낙원에 들어가게 했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께서 피고 값주고 사신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성도들의 어머니로서 교회는 이처럼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성도들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공급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실화 : AD95년에 로마에서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가혹하게 핍박하는 명령을 내리고 난 후 황제의 바로 밑에 있었던 훌레비우스 클레멘스 집정관이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이 발표되자 온 로마가 발칵 뒤집히게 되었다. 클레멘스의 아버지도 아주 유명한 분이었다. 그 아버지의 이름은 훌레비우스 사비누스이다. AD64년 로마의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질러 놓고 그 책임을 크리스천에게 덮어 씌워 모든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이게 했던 총 책임자가 바로 사비누스였습니다. 바로 그의 아들이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왜 클레멘스가 변화되었는지에 대해서 야사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크리스천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야생동물들에게 물어 뜯기고 죽어가면서도 구세주를 찬양하며 주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화형식에서 불타는 자신의 몸의 아픔을 호소하는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주 예수를 바라보면서, 저 하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들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넘게 하는 힘, 불의 고통과 괴로움을 넘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게 하는 힘이 저들이 믿는 힘이라면 나도 믿으리라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찬송 : 찬송가 작곡자인 Eddie L. Ruddick은 죽음을 호령하며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위해서 이런 찬송을 남겼을 것이다. “갈보리 길 인하여”(By Way of Calvary)…

1. 영광의 길 너 걷기 전에 갈보리 길 너 걸으라 네 모든 것 주께 맡긴 후 하늘 문을 바라보라

2. 길 헤매는 영혼을 위해 십자가의 길이 있네 죄에 빠진 영혼을 위해 주님께서 피 흘렸네

후렴 :  하늘가는 다른 길 없네 오직 예수 오직 한 길 영광의 길 너 걷기 전에 갈보리 길 너 걸으라

한국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할 때 이런 도전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2천 년 전 갈보리 언덕에서 당신의 생명 전부를 걸고 우리를 살려 주셨다는 사실. 지금 이 시간도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 원자폭탄보다도 더 강력한 사랑을 장착하고 있는 이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분명코 사람들은 변하고 달라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한 번 뿐인 인생을 통째로 바쳐서 목이 쉬도록 외치며 목회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지금 현재 우리들 곁에 머물러 있는 성도들은 과연 미더운 사람인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꺼이 맡길만한 미더운 사람인가요? 우리가 이 자리를 떠나야 할 때, 나만큼 만이라도 현장을 품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정말 예수님 때문에 이 자리를 지켜온 당신 만큼만의 효과라도 이어갈 수 있는 제자가 몇 명이나 될까요? … 이 도전이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순간 여기 저기 고개를 떨구고 눈시울을 적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이와 같은 도전을 여러분께 드려본다면 이렇겠지요? 내 자녀를 기꺼이 맡아줄 신앙이 동지가 있나요? 길 가던 나그네가 잠깐 머물렀다 떠났는데, 다시 오고 싶고, 다시 보고 싶다 말하는 만남이 있나요? 그대가 정들었던 곳을 떠나려 할 때 가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붙잡아 줄 사람이 있습니까?

썩어버린 가치관과 의식 하나를 바꾸지 못하는 복음이라면, 그런 복음은 본래부터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진짜 변화되었다고 할 때 도대체 무엇이 변했다고 말합니까?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가친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가친관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을 보는 가치관입니다.

우리의 복음은 뭐지요?

최순철목사 - 02/2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