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장 22-33절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어 주기를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들어가는 말>

성경을 읽으면 인생이 보인다.

성경을 읽으면 인생이 보입니다. 성경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시대적 적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10:11). 성경은 과거 역사 속에서 살아갔던 믿음의 조상들이 삶을 통해서 승리했던 이야기, 패배했던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그들을 만날 때, 살아 있는 스승이 되어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그 만남 속에서 인생을 변화시킬만한 중요한 원리들을 전수해줍니다.

3찬 전도여행이 끝날 무렵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이 끝나갈 무렵 AD 57년. 고린도에 3개월 정도 머물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냥 읽어 내려만 가는데도, 목회적관점에서 보면 목자의 마음이 느껴지고,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전도자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24절“너희가 그리로 보내 주기를 바람이라” 선교사의 파송입니다.

25절“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섬김입니다.

26절“예루살렘성도중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나눔입니다.

27절“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구제입니다.

30절“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중보기도입니다.

바울은 이제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여정을 출발하기 위해서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사도적 사역에 있어서 마지막 일정을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로마서를 57년경에 썼고 67년에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기에 어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마지막 여행일지 모릅니다.

사도행전 20: 24-25“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사도행전 21:13“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했습니다. 그 마지막 인생길을 나서면서 바울은 ‘보고픈 사람들’‘만나고픈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연보를 가지고 고린도에서 예루살렘교회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에게로 가려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향하려고 합니다. 로마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복음의 불모지인 서바나로 가려합니다.

이 여정을 거리로 환산해보니까 첫 번째 고린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300킬로미터,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는 2400킬로미터, 로마에서 서바나까지 여정은 1100킬로미터입니다. 480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가려고 일어선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할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이제 아그립바왕앞에 서서 마지막 복음의 증인으로서 생애를 마감하고 42년. 다메섹에서 들었던 주님의 음성이 있는 곳. 우리들이 가야만 하는 본향으로의 여행이었습니다. 비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참으로 위대한 전도자였습니다. 복음속에서 자신이 살아가야할 길을 발견하고 끝까지 달려 갈 길을 마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그리스도의 일꾼은 오직 은혜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1516절 말씀입니다.“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었습니다.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방인을 번제단의 제물로 드린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안에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제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들로 하여금 성령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가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번제단에서 사용되는 다섯 개의 도구들을 통해서 중요한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번제단의 다섯 도구

출애굽기 273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긋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번제단에서 사용되는 다섯가지 도구가 있는데 이것이 제사장 직을 수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첫째는 재통이다. 번제단에서 태워진 찌꺼기가 바람에 날리면 성막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재를 담아 두었다가 진밖에 버리는 통이다. 촛대의 심지가 불을 지피기 위해서 자신을 태웁니다. 심지가 어느 정도 타게 되면 잘라 줘야만 그을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나도 모르게 구부러지고, 먼지가 쌓일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잘 담아주고, 약점을 담아서 감당해주는 성도가 바로 재통 성도입니다.

둘째는 부삽이다. 번제단에서 제사를 지낸후 여기 저기 찌들어 있는 것을 긁어 내는 도구가 부삽이다. 교회가 부흥하다 생기는 찌쩌기, 공동생활하다가 생기는 시험받는 요소들을 찌꺼기 처럼 여기 저리 얼룩질때가 있다. 서로 반목하는 찌꺼기, 예수의 제자들처럼 서로 큰자라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교만의 찌꺼기들이 생길때가 있다. 이때 바로 부삽같은 성도가 필요한 것이다.

셋째는 대야이다. 제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뺀후 번제단에 올려 놓기 위하여 고기를 담아 나르는 그릇이 대야 이다. 대야 성도는 영혼을 주님 앞으로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 성도를 말한다.

넷째는 갈고리이다. 고기 갈고리는 대야에 담아온 고기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연결 시키는 기구이다. 이것은 교회안의 사랑의 고리를 의미한다. 아무리 대야 성도가 전도를 많이 해와도 갈고리 성도가 없으면 안 된다. 처음 믿는 성도들이 사랑의 공동체안에서 서로 연합할 수 있도록 갈고리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는 불을 옮기는 화로입니다. 교회에는 불씨가 있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나 하나님의 교회는 불을 담아 나르는 화로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언제나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됩니다.

마지막 복음 전도

바울은 번제단의 다섯 도구로 무장된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세워가기 위해서 멈출수 없는 발걸음을 띄우고 있습니다. 마지막 여행 4800킬로 미터의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길은 바울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그 후로 67년 로마의 한적한 가옥에서 영원한 본향에 입성했던 그날까지 25년간 바울의 심장은 오로지 주님의 복음만을 위해서 뛰었습니다. 갈라디아 6:14“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실례 : 서울여대 기독교교육학 김창옥교수의 강의중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어느 마을에 마마가 돌아 아이들 대부분이 죽었답니다. 그 가운데 어린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얼굴은 온통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서 소녀는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게 됩니다. 많은 날을 울고 또 울면서 다녔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그레이스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레이스야! 네가 어렸을 때 이 마을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었단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다 죽었지만 하나님이 너만 살게 하였어! 그래서 하나님은 네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릴까봐 네 얼굴에 사인을 남겨 놓으신 거야! 그래서 이름을 그레이스라고 지었단다!.” 그레이스라는 말이 한국말로는 ‘은혜’라는 뜻인데, 영어로는 ‘갚은 수 없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날로부터 자존감을 가지고 밝게 커갔습니다. 자존감이란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레이스튼 훗날 하버드 법대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졸업반이 될 무렵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레이스튼 적극적으로 마음에 드는 학생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자신의 얼굴에 대하여 놀라워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의 흔적은 하나님의 싸인임을 알았기에 오히려 더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레이스의 그런 밝고 따뜻한 성품에 반한 친구를 만나 결혼을 했고, 남편은 상원의원으로, 그레이스는 하원의원으로 많은 사람들을 섬기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하나님의 복음’이라 했습니다.

고후2:12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엡1:13절에는 “구원의 복음”이라고 불렀고, 엡6:15절에는 “평안의 복음”이라고 외쳤습니다. 계시록 14:6절에서 사도 요한은 “영원한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복음 안에 생명이 있다! 복음안에 소망이 있다! 복음안에 구원이 있고(엡1:13), 계시가 있고(갈1:10-12), 비밀이 있고(엡6:10), 능력이 있다(롬1:16)고 했습니다. 복음이면 다 되었습니다.

복음이면 모든 일에 ‘예’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마지막 적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26-27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헤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본향을 향하여 가게 합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

히브리서에 보면 본향을 사모하면서 오늘이라는 현실속에서 꿋꿋하게 신앙의 빛을 발하면서 살아간 믿음의 선진들이 나옵니다.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3-16).

‘이 사람들’본향을 사모하되 더 낳은 본향을 사모했던 사람들입니다.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본향을 그리워하다가 죽지 않고 하늘로 입성한 에녹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로운 사람의 선명한 기준이 되어 살다가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된 노아가 그랬습니다.

네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갈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하다가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돌아갈 본향을 생각하면서부터 이스라엘 조상이 되어갔던 야곱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로부터 400년 후. 애굽에서 60만 백성을 이끌어 고향을 향해 떠났던 모세가 그랬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이 처음 시작된 여리고성 이방 여인 기생 라합도 더 낳은 본향을 사모했습니다.

복음은 무슨 의미입니까?

여러분에게 복음은 도데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복음은 얼마나 실제가 되셨습니까?

여러분은 언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여러분의 것이 되셨습니까?

네가 원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다! 네놈의 목숨을 뺏겠다! 네 건물을 뺏겠다! 너의 모든 걸 빼앗겠다!

너! 그래도 네 안에 남은 게 있느냐? 쉽게 말하면 ‘너 예수면 다냐?’ 이렇게 말할 때…

살아 있는 교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면 다다! 예수면 다다 ! 이 말입니다.

예수께서 저에게 처음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주셨다더라! 너는 내가 너를 대신해서 죽을만큼 소중한 사람이야!

내 인생의 의미도, 내 인생의 가치도,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왜 이땅에 살아야 되는지를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난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난 그 한마디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피조물인 나를 위해…생명을 내주었다는 사랑표현 외에 무슨 증거를 더 구하겠나?‘너 예수면 다냐?’그러면 가만히 조용하게 대답할 수가 없어요! 다다! 다다! 다다! 다지!

나에게 다일뿐만 아니라 ! 나만 예수가 필요한게 아니라 너도 필요하다!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엎어지고 넘어지고 흔들리고 부끄러운 시간들이 있었지만 …

그러나 나는 절대… 내가 아무리 나를 용서할 수 없을만큼 넘어졌어도…

그 넘어짐보다 더 큰 건 … 나를 사랑해서 져 주신 … 주님의 십자가가 더 큰 결론이다!

나는 주님에게 신실하지 못한 때가 있었어도… 주님은 신실하셨어!

나는 약속을 어겼었지만 …주님은 나에게 한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으셨다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감히 나의 나된 것을 말하라면 … 주님의 은혜 밖에 없어요!

새끼 손가락 하나도 주님 없이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요!  그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본향을 사모하면 오늘을 살아갑니다. 어려워도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찬송 / 238장 해지는 저편

1. 해지는 저편 새 하늘에는 우리 주 예수 계시오니 고난은 가고 찬란한 새벽 영광의 날이 밝으리라

2. 해지는 저편 구름도 없고 무서운 폭풍 없으리니 즐거운 그날 영원한 그날 해지는 저편 기쁨 넘쳐

3. 해지는 저편 하나님 나라 주께서 우리 인도 하네 주님이 나를 영접해주니 영원히 주를 찬송 하리

4. 해지는 저편 그 영광 중에 먼저 간 성도 만나보리 영원한 본향 그리운 그곳 이별의 슬픔 없으리라

최순철목사 - 02/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