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장 13-23절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하나님의 미소, 그 기쁨이 흐르는 곳”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실례 :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살아갑니다. 1번 “남조차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만 있습니다. 2번 “남을 남으로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3번 “남을 기꺼이 우리로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저는 여러분들의 모습속에서 “남을 기꺼이 우리로 만들며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

사도 바울은 로마서14장에서 세상에는 두 나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두 나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말씀으로 다스려지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로 대화하면서 함께 호흡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과 함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어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17-19하나님의 나라는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하나님 나라는 성령안에 있는 의의 지수, 평강지수, 희락지수가 높아질수록 누려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자연을 변화시키는 기후와 같습니다. 온도가 내려가면 겨울이 오고, 온도가 올라가면 꽃피는 봄이 옵니다. 온도의 변화는 태양과 관계가 있습니다. 태양과 가까워지면 봄이 오고, 태양과 멀어지면 겨울이 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성경적인가를 본문 말씀을 통해서 명확하게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반드시 “성령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성령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들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음부의 나라

두 번째 나라는 음부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곳인데, 음부의 나라는 마귀를 희죽거리게 만드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한 곳인데, 음부의 나라는 비판과 참소와 판단이 난무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의를 이루고, 평강을 가꾸며, 희락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넘어질 수 있습니다.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13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여기서 ‘다시는’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는’이라는 말에는 ‘예전에는’이라는 과거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던 과거, 변화된 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습관과 행동에 묶여 있었던 흔적들을 말합니다. 그것들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말고 이제부터는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신중하라는 것입니다. 반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질로 굳어지기 전에 깨뜨리고 지금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처럼 강퍅해지기전에 하나님 나라를 맛보라는 것입니다. 평강의 기질로, 희락의 기질로, 의로운 기질로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남들을 우리로 만들어가려고 연습하라는 것입니다.

한편의 강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을 비판했습니다.

마태복음 2744절에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비판의 기질은 지옥의 기질이고, 마귀의 기질임이 분명합니다. 비판의 기질은 지옥의 고통이 가해져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질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이 십자가에 달린 한편의 강도를 통해서 말씀합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을 향해 함께 욕했던 강도가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자기의 동료를 꾸짖고 자신의 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무엇을 본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2343절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본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에서 평강을 보았습니다. 의로움을 보았습니다. 극도의 고통이 치열하게 몰려왔지만 주님 안에 열린 낙원의 문을 걸어 잠글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은 비판과 조롱과 매맞음과 채찍앞에서도 전혀 호흡이 흩트러지지 않으셨습니다. 억울하셨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속에 가득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세계는 세상의 비판과 조롱과 침뱉음으로는 결코 출렁거리게 할 수 없는 재질이기 때문입니다.

비판기질, 판단기질은 영적생활에 매우 해로운 요소입니다. 쉬게 끊어낼수 없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매여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장대 높이 달려 있는 놋뱀을 바라만 보아도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졌습니다. 주님과 함께 아파하면서 주님처럼 남들을 우리로 만들어가면서 하나님 나라가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의 아침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도 웃게 되셨습니다. 그날로부터 마귀는 영원히 패배했습니다. 더 이상 희죽거릴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사람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미소짖게 하는 사람속에는 성령안에서 의화 평강과 희락이 열린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선명한 기준이 된 사람이 나옵니다. 노아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때의 세상은 도덕적으로 파탄 상태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슬프시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를 창조한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창세기 6:5-6“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한 사람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세가지 이유

첫 번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기쁨을 드렸습니다.  창세기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마음을 같이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는 말입니다. 사랑함으로 따랐다는 말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38).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법과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드려야 하는 가를 배워야 합니다. 그 어떤 것도 이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노아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쁨을 드렸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신뢰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11:7)

어느 날 하나님이 노아에게 너와 동물들을 구할 수 있는 배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의실할 수도 있는 네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노아는 비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2) 배를 처음 만드는 것이고, 이것이 물에 뜨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배를 만든다고 해도 노아가 있는 곳에서 바다까지는 수십 킬로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배를 어떻게 물가로 옮길 수 있습니까? 3) 동물들을 어떻게 다 모으느냐 하는 것입니다. 공중의 날아다니느 새들을 어떻게 모으며, 기어다니는 온갖 종류의 파충류들을 어떻게 모을 것입니까? 4)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판단의 목소리였습니다.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신뢰했습니다.

세 번째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기쁨을 드렸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한번 들음으로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정확하게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10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방주를 만들어 가는데 성경에서는 노아가 방주를 만들다가 포기했다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심어린 순종이었습니다. 명령에 조건을 달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체없이 순종했습니다. 망설임없이 바로 행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하겠습니다!’라거나 ‘기도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띄엄띄엄순종하려고 합니다. 내가 순종하기 좋아하는 부분은 알토란처럼 속속 빼내어서 순종하려고 합니다. 어렵고 비용이 들고, 인기없는 명령들은 다른 분들에게 양보를 합니다.

성경은 읽겠지만 기도는 하지 않겠다든지, 봉사는 할테니까 간섭은 하지 말라든지, 교회는 나올테니 십일조를 내라는 말은 하지 말라든지… 뭔가 2%가 모자란 순종입니다. 이것은 불순종입니다.

온전한 순종이 의를 이룹니다. 온전한 순종이 평강과 희락을 일으킵니다.

시편100:1-2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노아를 통해서 기쁨을 얻으신 아버지께서 노아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혼탁함 속에서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였습니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보석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

여기“은혜”를 의미하는 히브리말은“핸”인데,‘숙이다, 굽히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높은 자가 지극히 낮은 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혔다는 뜻입니다.

이 은혜에 대한 단어를 예수님이 직접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의사 누가가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이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12:35-37)

주인을 기다립니다. 허리에 띠를 띈채로 기다립니다. 서 있습니다. 졸립고 피곤하지만 참고 기다립니다.

이 종은 종으로서의 선명한 삶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했습니다. 적당히 살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돌아오니 저절로 문이 열립니다. 주인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감동하십니다. 고마워하십니다.

종을 앉히고 주인이 띠를 띠고 종으로서 종을 주인처럼 대접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핸”이라는 은혜는 하나님이 친히 호의와 고마움을 얻는 자에게 주는 고개 숙이심입니다.

노아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패역할 때 하나님 사람의 선명한 기준이 되어 드렸습니다.

노아야! 잘 살아 줘서 고맙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고개를 숙이신 것입니다.

실례 : 캘리포니아의 넓은 사막지대에는 두 종류의 새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콘도르라는 남미산 독수리입니다. 이 새는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죽은 동물을 찾아 먹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벌새라는 조그마한 새인대 이 새는 사막에 핀 꽃을 찾아 그 꽃의 꿀을 떠 먹으며 살아갑니다.

인생 중에도 사막 가운데서 아름다운 꽃의 꿀을 찾아 맛보는 벌새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콘도르처럼 썩은 동물을 먹이로 연명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벌새 같이 매사에 꿀을 찾아 그 맛을 풍기면 다른 꽃들의 더 꽃피우고, 열매를 더 열매 되게 만드는 삶이 진정 아름다운 삶인 것입니다.

최순철목사 - 01/2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