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장 14-21절 말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고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실례 : 일본 최고의 석학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 경제가 쇠락한 핵심 원인으로 도전 의식의 결여라고 보았습니다. 한 예로 대기업 엘리트 직원들의 80-90%가 해외 근무를 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해외에서 공부하려는 학생들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일본인들은 한 가정에 한 자녀만 키우고, 그 자녀는 부모 곁을 떠나기 싫어합니다. 결혼 적령기의 자녀들의 34%가 부모 옆에 붙어사는 캥거루족들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지난 삼십년간 일본정부의 경제력이 안정되면서 국민들의 헝그리 정신을 사라져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의 현실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무너져가는 일본의 오늘은 과거에 뿌렸던 씨앗의 반영이라고 보았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인접 국가들과 벌인 전쟁에서 흘린 엄청난 피의 대가로 보아야 합니다. 지난 100년의 세월동안 일본은 한국전쟁, 중일전쟁, 러일전쟁, 독일과 함께 패망한 2차세계대전, 진주만공격…1945년 8월 7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4.5톤의 원폭이 투하되었습니다. 원자폭탄을 직접 맞은 국가는 일본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저들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인 것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원폭의 피해자라고만 주장합니다. 원폭은 당시 히로시마 인구 24만명 중 14만명이 직접 희생되었고 건물 9만 채 가운데 6만 2천채가 파괴 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이나 한 국가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한 가지 틀림없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은대로 거둔다는 불변의 법칙입니다. 오늘은 과거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원한다면 오늘 무엇을 심어야 할지 분명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심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목이 쉬도록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그 은혜를 심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일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설교

제가 어렸을 적에 들었던 설교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설교가 있습니다.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첫째로 있어서는 안될 사람, 둘째로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셋째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첫째로 있어서는 안될 사람은 강도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훔치고,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있으나 마라 한 사람들은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그대로 지나쳐가는 레위인, 제사장들입니다. 지금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합니다. 셋째는 꼭 있어야 할 사람, 없어서는 안 될 사람,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자신의 물질을 들여서까지 강도 만난 사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설교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 생각나게 하고 싶은 말씀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면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목자도 없이 스스로 모여서 , 복음을 묵상하며,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들의 몸부림을 중심을 다해 격려하고 있습니다. 22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가고 싶었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알려 주고 싶어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로마의 성도들에게 소망이 되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되새겨 주고 싶은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뭔가 우리들이 다시 생각해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은혜로 일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16절을 보면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일꾼이라는 단어는 조금 특별한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일꾼’이라는 단어는 네가지 계층의 사람들을 가리킬 때 붙여진 단어였습니다.

첫째는 사제들입다. 둘째는 합창단원입니다. 셋째는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자입니다. 넷째는 군인입니다.

당시 사제들은 신에게 제사드리는 사람들로서 백성들은 사제들을 통해서 신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합창단원은 노래하는 사람들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풀어주고, 즐거움을 얻게 했습니다. 경주자들은 백성들의 삶에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마치 박지성 형제나 김연아 자매가 우리들 가슴에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인들이 있어서 안심하고 살수 있다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꾼의 의미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로 인하여 이 도성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노래하는 찬양으로 이 도시를 춤추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전당에 빛나는 신앙의 금매달리스트로서 당당하게 우리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줘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도와 외침과 부르짖음으로 이 도성안에 백성들이 안돈과 평강을 얻게 해야 합니다. 해오름교회가 저렇게 기도하고 있으니 아직은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돔성은 의인 열사람이 없어서 무너졌습니다. 우리로 인하여 이 도시가 살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이 성경적인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든든히 서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은혜로 일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15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만삭되어 나지 못한 나같은 자에게도 찾아오신 예수님.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일군이라도 은혜를 받은 사람과 품삯을 받은 사람은 그 다음이 다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천국비유를 포도원 주인의 마음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이 비유에서 설명하는 핵심은 주인의 마음입니다. 아침 6시에 들어온 일꾼에게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씩 주겠다고 약속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장터에서 마지막 들어온 품꾼들에게도 주인은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습니다. 여기 주인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마지막 품군이 받은 한 데나리온은 삯이 아니라 주인이 베푼 은혜였습니다. 마지막 품군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 은혜가 품군의 남은 생애를 간증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주인에 대하여 외치며 살아가게 했습니다. 주인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이렇게 성경에 기록해서 후대에 남겨 두었을까요!

은혜받은 자의 결과는 받은 바 그 은혜를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뻗어나가게 합니다. 주인의 마음이 품꾼의 가슴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품꾼의 입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누룩처럼 가루들을 변화시켜 갑니다. 누룩이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변화시켜 천국 백성 만드셨습니다.

은혜로 일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둘째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17-18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가복음 16:20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속에 담긴 능력의 말씀들이 선포되는 곳에는 언제나 성령의 능력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은혜로 일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실례 : Amazing grace(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의 찬송가 작사자인 죤 뉴톤은 말하기를 “우리 신앙 생활의 경험을 통해 반드시 발견하는 세 가지 놀라운 체험이 있다. 첫째는 내가 죄인이라는 발견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셨다는 발견이고, 세 번째는 나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런 나를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고 했다.

셋째는 은혜로 일하는 일꾼만이 복음의 제사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라!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복음의 제사장 직무는 성막의 번제단에서 배울수 있습니다. 번제단은 하나님께를 제물을 바치는 곳입니다. 출애굽기 273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긋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번제단에서 사용되는 다섯가지 도구가 있는데 이것이 제사장 직을 수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첫째는 재통이다. 번제단에서 태워진 찌꺼기가 바람에 날리면 성막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재를 담아 두었다가 진밖에 버리는 통이다. 촛대의 심지가 불을 지피기 위해서 자신을 태웁니다. 심지가 어느 정도 타게 되면 잘라 줘야만 그을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나도 모르게 구부러지고, 먼지가 쌓일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잘 담아주고, 약점을 담아서 감당해주는 성도가 바로 재통 성도입니다.

둘째는 부삽이다. 번제단에서 제사를 지낸후 여기 저기 찌들어 있는 것을 긁어 내는 도구가 부삽이다. 교회가 부흥하다 생기는 찌쩌기, 공동생활하다가 생기는 시험받는 요소들을 찌꺼기 처럼 여기 저리 얼룩질때가 있다. 서로 반목하는 찌꺼기, 예수의 제자들처럼 서로 큰자라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교만의 찌꺼기들이 생길때가 있다. 이때 바로 부삽같은 성도가 필요한 것이다.

셋째는 대야이다. 제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뺀후 번제단에 올려 놓기 위하여 고기를 담아 나르는 그릇이 대야 이다. 대야 성도는 영혼을 주님 앞으로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 성도를 말한다.

넷째는 갈고리이다. 고기 갈고리는 대야에 담아온 고기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연결 시키는 기구이다. 이것은 교회안의 사랑의 고리를 의미한다. 아무리 대야 성도가 전도를 많이 해와도 갈고리 성도가 없으면 안 된다. 처음 믿는 성도들이 사랑의 공동체안에서 서로 연합할 수 있도록 갈고리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는 불을 옮기는 화로이다. 불은 성령의 불을 의미한다. 교회에는 불씨가 있어야 한다. 불같이 뜨거운 성도가 있어야 한다. 어느 교회이든 불씨같은 불 붙이는 화로 성도들이 반드시 있다. 이들이 언제나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된다.

오늘 이처럼 서글픈 생각속에 묶여 있는 영혼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이 도전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19-20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일루리곤이란 현재 알바니아와 유고슬라비아인 지역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영역은 참으로 도전적이고 편만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 갔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더욱 훌륭한 것은 복음 전하는 선교의 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삶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였습니다. 선교의 시작은 바로 가까운 지역에 잃어진 영혼을 구원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영혼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를 따르느니라

목자 안따라가면 다른 길이 없으니깐…그게 험해 보이든 불가능해 보이든 상관없이…가자면 가고… 서자면 서고…건너자면 건너고… 따르느니라!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 잘 알지만… 절대적입니다. 다른 여지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네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나를 결코 따라 올 수 없다! 죽고자 하지 아니하면 죽지 않고는 따라 올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에 … 결코 우리 생애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가장 끈찍한 가장 더럽고 수치스럽게… 벌거 벗겨진채로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히고, 얼굴에 침을 뱉고 갖은 모욕을 당하게 하고 십자가에 매달아서 … 유대인의 상식으로는 저주를 받은 자만 매달리는 나무가 저기 있는데… 거기까지 가라 그러면 가는 거예요!..  우리의 형편이 어떻든 어떤 상황이든 자다가 깨서라도… 물을 때 …머리가 터져 나갈만큼 고민하다가도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면… 따라야지!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에 덜도 더도 있을 수 없어요…누구라도!  저 개인에게 묻는 다면 저 여전히… 주님을 따르는 편을 택하겠어요!… 엎어졌다가도… 넘어졌다가도… 부끄러움을 당해도 …. 나 주님 따르겠어요… 더욱 따르겠어요…그 길밖에는 없으니깐…우리가 어떤 은혜를 입었는데…우리가 어떤 사랑을 받았는데…나를 어디서 구원해 주셨는데, 어떻게 구원하셨는데!!!  안되면 엎어져서 주님 앞에 매달리고…내 가슴을 찢어야 될 일이지… 다른건 말할게 아무것도 없어도…그 사람들 예수님이라면 벌떡일어나더라!… 고민하고 싸우다가도… 예수님이 뭐라고 했다 그러면…무릎 탁 꿇더라! …너덜너덜 찢겨지고 부서져도…주님이 가자! 그러면 벌떡일어나더라! 겁이 나서 덜덜 떨면서도 무서워도 가더라!  못하겠어도 순종하더라! … 이런 말을 해서…

우리 주님이 가장 높임을 받으셔야 돼…우리 주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셔야 돼…예수면 다야? 예수면 다냐고?…그럼 …다지! … 그럴수록 다지! … 그러기에 다지! …어떻게 어띠까지 이르렀든 상관없이 누구를 따를거야! 지금!… 믿음을 취하자고… 넌! 날! 따르라!

실례 ; 영국에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전도는 당시 부도덕성에 빠져 있고, 세속에 물들어버린 영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사회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복음운동을 시작한 젊은이의 이름은 바로 구세군 운동의 창설자인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였습니다. 1904년 에드워드 7세 국왕은 윌리엄 부스를 버킹햄 궁에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서 그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왕이 부스의 사인을 받으려고 앨범을 꺼내자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왕이시여! 어떤 사람의 야망은 예술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성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황금입니다. 그러나 왕이시여! 저의 야망은 사람들의 영혼입니다.”

최순철목사 - 02/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