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에 이는 아지랑이처럼

2012년 봄. 요 며칠 70도를 웃도는 기후로 봄꽃들이 만발했다. 예년보다 2주가량 앞당겨진 벚꽃축제만 보아도 이제 완연한 봄이다. 정오를 넘긴 시간에는 제법 봄볕에 이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지랑이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어린 시골풍경. 봄볕아래 멍석을 펴고 마주 앉으신 왼손잡이 할머니와 오른손잡이 어머니의 모습. 겨우내 사용했던 놋그릇들을 꺼내놓고, 매끈한 빛 설기를 위해 광내기를 하신다. 한주먹 비틀어 움켜쥔 볏짚에 물을 적시고, 곱게 부순 연탄재로 녹을 벗긴다. 그리고 아궁이 가마솥 밑에 달라붙은 재를 긁어내 놋그릇에 광을 내신다. 빛 설은 놋그릇들이 한 줄 높이 쌓여 갈 때면 점심시간이다. 겨울을 지나 숙성된  동치미 국물에 국수한 그릇 말아 먹자면 톡 쏘는 그 맛이 그만이었다. 박 바가지에 거친 보리밥 한 그릇에 열무김치 한줌 잘게 썰고 고추장과 참기름 한 술에 비벼 놓으면 잘 차려진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소박한 삶이었으나 정 가득하게 기꺼이 살아낸 우리의 부모님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말을 하기보단 듣기를 좋아하고, 묵묵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동네 어른들의 칭찬에 부응하려 더욱더 얌전해지려 애썼다. 장남으로 태어났기에 유독 잘키워보려는 부모님의 기대를 지니고 자랐다. 어머니의 가르침엔 언제나 말씀이 녹아져 있었고, 신앙이 배어있었다. 다른 이들의 속을 보듬기 위해 언제나 내속 한 켠 은 따뜻한 온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셨다. 부모를 떠나 한 가정을 이룬지 28년째다. 내 인생도 어느덧 52년의 세월을 뒤로했다.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이제는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곤 한다.

사랑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심방을 할 때면 더욱 시간의 무상함이 덧없다 여겨진다. 예년만 해도 반듯하셨던 허리들이 구부정해지시고, 발걸음을 옮기실 적마다 조심스러워하시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신다. 어른들의 느려지신 발걸음을 미쳐 고려하지 못한 채 내 걸음으로 앞질러 가곤 저만치에서 멈춰서서 기다릴때마다 미안해 하면서도, 기꺼이 종과 함께 더 어려우신 어른들을 돌보시는 모습에서 봄볕의 아지랑이처럼 한들거리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고맙습니다. 함께 계셔 주셔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어 주셔서!

최순철 - 03/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