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로서의 자비(慈悲)

 

사랑할 자(慈)와 슬플 비(悲)입니다. 자비라는 말은 ‘마음으로 사랑하며, 마음으로 함께 슬퍼해주는 마음’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어렸을 적 동네에 어떤 가정이 슬픔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마마를 앓다가 아이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때는 종종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그 어머니의 아련한 울음소리가 생각납니다. 우물을 가운데로 일곱 가구가 어울려 살았는데, 그 어머니의 슬픔은 혼자의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이웃들이 함께 아파했습니다. 그렇게 함께하는 슬픔이 자비의 마음일 것입니다.

‘산해경’과 ‘위지’의 ‘동이전’에 의하면 “고대 한국인들은 길을 비켜주고 다투지 않으며 예의를 지키는 질서 속에서 조용한 아침의 자연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고 하였습니다. ‘전한서’제28권 하권 ‘지리지’에 의하면 “조선의 동이족은 천성이 부드럽고 공손하며 삼방(三方)의 민족과 다르다”고 하였습니다.(송항룡, 도교신앙의 전개양상과 생활세계, 한국사상사대계2,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1.384쪽)

마태복음 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자비’는 ‘엘레오스’로‘긍휼’이라는 뜻입니다. 예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자비로운 심장을 지니는 것입니다. 긍휼한 마음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하나님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입고 있어야 할 다섯 가지 옷이 있습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의 옷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자비는‘크레스토테스’입니다. 이 말은‘관용, 너그러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크레스토테스’는‘크라오마이’를 기본어근으로 하고 있는데, ‘신탁을 주다, 그 위에 불을 밝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도록 그 사람의 위에 불을 밝혀 준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정신입니다.

자비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신명기 4: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미국 야구역사에 투수로서 메이저리거가 된 흑인 형제가 있습니다. 사첼 페이지입니다. 그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절에 야구선수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백인선수들이었던 시절에 흑인으로서 선수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기까지는 매우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그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그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입니다. 그의 가슴은 상처로 얼룩진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극복하고 승리를 일구어내었을 때 배운 교훈은 바로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였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성령의 열매로서의 자비에 가까운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최순철 - 08/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