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같은 참사람

하나님께서 제일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때는 이미 이 세상 만물이 다 지어져 있었다. 세상에 없는 재료가 없었다. 단단하기를 말한다면 강철이 더 단단하고, 불변하기를 원한다면 금이 더 불변하고, 값으로 따진다면 다이아모든가 훨씬 비싸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그 어떤 재료도 사용치 아니하시고 흙으로 빚으셨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재료로 흙을 사용하셨을까? 흙이 지닌 특성을 연구해 보면 참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놀라운 단서를 찾게 된다.

흙은 생명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잉태된다. 초식동물도, 육식동물도 흙에서 나는 열매를 먹고 산다. 어류마저도 흙이 물을 담다주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흙은 생명이다. 이 생명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다. 흙은 무엇이든지 다 포용해 줍니다. 흙은 배척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수용한 뒤에 자기 품으로 품는다. 받아드릴 뿐 아니라 그것들을 산화시키고 정화시켜준다. 만약 흙이 이 세상의 쓰레기와 오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상은 온통 쓰레기장이 되었을 것이다.

흙은 정직성을 지니고 있다. 흙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되지 않는다. 팥을 심으면 팥이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직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시편 25편 8절에 “여호와는 선하시며 정직하시니 그 도로 죄인을 훈계하시도다.”그리스도인은 정직해야 한다. 참 사람이라면 정직한 사람이다. 정직한 사람이 참 사람이다. 물론 정직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러나 그 대가가 두려워서 정직하지 아니한다면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흙은 겸손성을 지니고 있다. 흙의 위치는 언제나 사람의 발아래 놓여 있다는 것이다. 발밑에 깔려 살아간다. 산꼭대기에 흙이 있다고 해서 흙이 사람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아이가 올라가든 어른이 올라가든 거기에 누가 올라가든 흙은 언제나 사람의 발밑에 존재한다. 겸손을 보여주는 것이다. 겸손은 ‘humility‘라고 한다. 이 단어는 라틴어 ’휴무스‘(humus)에서 나왔다. 이것은 ‘흙’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겸손해야만 참사람다운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human being’이라고 한다. 흙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겸손하지 아니하면 참사람일 수 없다.

최순철 - 09/3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