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경회 네번째 말씀 / 믿음으로 살아라 (롬1:17)

믿음으로 살아라 (롬1:17)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1“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복음의 시작이라고 했다. 여기 ‘복음(福音)’에서 복(福)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으로서의 시(示) 오른쪽편에 재물(-)과 말씀을 담은 그릇 ‘입구(口)’와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흘러가는 강물을 의미하는 ‘밭 전(田)’이 만들어낸 글자이다. 복음은 세가지 역할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에덴동산 같은 마음 밭(田을) 기경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말씀을 담고 살아 갈 수 있는 그릇(口)이 되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이다. 넷째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도록(示)하는 것이다.

원래 예배는 번제를 목적으로 한다. 번제는 죄 사함이다. 예배는 언제나 사함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용서의 역사가 영혼의 생명을 움트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 소제를 더하여 예배를 완성케 한 것이다. 소제는 감사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죄사함-용서-사랑이 주 목적이요, 여기에 소재-제물-감사가 함께 하는 것이다.

로마서14:23“…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믿음이 믿음에 이르게 한다. 제물을 바칠 때 양의 머리에 안수해서 바친다. 안수는 내것이 전가되는 것이다. 그래서 안수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안수하는 사람의 것이 나에게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히브리서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여기서 ‘실상’이라는 말은 ‘~ 아래 서다’(under+stand)는 의미이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이 없고, 날아가지 않는 알곡 같은 것이다. 신뢰란 ‘받침대가 되어주는 것, 초석이 되어주는 것, 바라는 것에 실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믿음만이 실상을 가능케 한다. 신뢰해주는 만큼 사람은 만들어진다. 의심없이 받아주는 것이 바로 실상을 완성케하는 시작이 된다. 이것의 시작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은 덕을 만들어낸다. 벧후1:5-7“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8-9“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11“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용서가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시작이요 믿음이 기초이다. 키질을 하면 알곡은 재자리를 지킨다. 쭉정이는 바람에 의해서 날아간다. 욥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엄청난 시련을 당했으면서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았던 것은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니다. 믿음은 금이다. 그래서 믿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변질되지 않는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영화나 영광을 챙길 수가 없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4“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고스인 말씀은 언제나 희생정신을 유발시킨다. 왜냐하면 말씀이 들어오면 타인의 죄를 자신이 청상해줘야 할 죄로 여기고 품어낸다.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믿음이 들어오면 조건없이 감사하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

하박국 317-18“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시온의 대로가 열리기 위해서는 대로를 가로막는 산같은 장애물은‘교만, 자랑’이다. 그런데 더큰 문제는 ‘열등감’이라는 구덩이이다. 열등감은 비교의식에서 온다. 그 비교의식 뒤켠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교만’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는 그날로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밖은 것이다.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생명과를 먹은자로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과, 생명과 없이 선악과를 따먹은자로서의 분별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생명과를 먹은 자는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도 덮어줌으로 변화 되도록 까지, 묵묵히 품어낸다. 마치 병아리가 알을 품듯이 말이다.

실례 : ‘졸탁동시(卒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어미닭이 정성껏 품은 알은 20일쯤 되면 알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삐약삐약’ 탁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오려는 신호를 한다. 병아리는 알 속에서 나름대로 공략 부위를 정해 쪼기 시작하나 힘이 부친다. 이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닭은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 준다. 그리하여 병아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졸」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행위로 밖에서 쪼와 주는 것이「탁」이다. 쪼을 졸(卒), 쪼을 탁(啄). 하나는 미성숙자가 스스로 자기 동기유발에 의해 행하는 행동이나 도움을 요청 하는 뜻이 포함되고, 다른 하나는 성숙자가 도와주는 행동의 뜻이 포함된다. 이 일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졸탁동시」이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습자 사이에 교수원리가 바로 ‘졸탁동시’ 상황이어야 학습 의 효과나 전이가 최대화 된다는 원리가 담겨있다. 행복한 가정은 부부(夫婦)가 ‘졸탁동시’ 할 때 이루어지고, 훌륭한 인재는 사 제(師弟)가 ‘졸탁동시’할 때 탄생하며, 세계적인 기업은 노사(勞使)가 ‘졸탁 동시’할 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졸탁동시’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내 속 세상을 먼저 변화하기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내 속의 세상을 먼저 변화시켜야 한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내가 변해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듣기이다. 어미닭이 아기 병아리가 부화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알려면, 어느 부위를 두드릴 것인지를 먼저 시그널(signal)을 잘 듣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병아리에게 필살의 도움을 줄 수가 있고, 함께 기쁨을 만들 수 있다. 가족의 소리, 다른 이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으면 위대함이란 없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란 말이 있다. 경청하지 않는 것은 받은 선물을 아무렇게나 뜯어 던져두는 것과 같다. 세 번째는 시간이다. 병아리가 ‘탁’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낭패를 본다. 네 번째는 낳음과 품음과 기다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졸탁동시’의 묘는 성숙한 어미로부터 알로써 낳아짐이 있어야 하며, 부화의 날까지 묵묵히 품어내는 어미의 품음과 기다림이 중요하다. 어미의 낳음과 품음과 기다림이 선행되어야만 진정한 탄생을 알리는 아이의 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최순철 - 10/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