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58:6-9

제목 / 금식, 그 성경속의 비밀(1)

본문 / 이사야 58:6-9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들어가는 말>

실례: 무신론자였던 이어령교수가 신앙의 사람으로의 변화됨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을 준 사람은 그의 딸이었습니다. 딸은 이혼과 암투병, 첫째 아이의 죽음, 자폐증을 앓는 둘째아이같은 온갖 시련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화여대를 3년만에 조기 졸업하고 미국에서 국제 변호사로 활동했지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남편도 잃고, 건강도 잃고, 자식도 잃었습니다. 모든것을 상실했던 그 순간에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만났던 하나님. 자신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깊은 수렁속에 있었을때 하나님을 그만큼 깊은 곳에서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서 아버지는 딸의 남다름을 보고 신앙인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가장 술렁이게 했던 사건이 2007년 아프카니스탄 단기선교팀 납치 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지탄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한국 최고의 지성이었던 이어령 교수, 무신론자였던 이어령 교수가 세례를 받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주는 것,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는 것,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주는 것, 가난한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것,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 골육을 피하지 않고 가까이 대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금식과 이런 것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금식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바로 이런 것들을 위하여 하는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금식이어야 진정한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실례 :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금식은 그리스도인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 잘못된 쾌락에 굴복하지 않고 올바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때대로 육체가 누리는 즐거움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죤 칼뱅은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중요한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는 금식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금식은 마음을 더욱 간절하게 하고 기도에 전념하게 해준다. 배가 잔뜩 부른 상태에서 하나님께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개혁주의 목회자인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금식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그 어떤 것도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결단을 표현하고 또 확고히 하도록 도와준다.” 침례교 목사인 존 파이퍼(John Piper)는 “옛 성인들은 금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갈망으로 굶주려 있었고, 단순한 마음의 굶주림이 아닌 몸의 굶주림을 통해 그 갈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금식의 ABC가 있습니다. A는 상황입니다. B는 금식자체입니다. C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금식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금식해야 할 상황 때문에 하는 것이다!

죽음의 상황, 죄의 상황, 두려움의 상황, 위험의 상황, 질병의 상황, 빈곤의 상황이 오면 자연스럽게 금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는 금식에 자연스럽게 순종할 때 하나님이 행하고 계시는 일들이 그 금식을 통해서 놀라운 결실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은 무시하고 오로지 결과에만 집착하는 금식은 진정한 성경적인 금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결과를 조작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몸의 돌이킴

요엘2:12-15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성경적인 금식에서 으뜸은 회개를 위한 금식입니다. 회개를 히브리말로 ‘슈브’(shuv)는 ‘돌아서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회개를 위한 금식은 몸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절기중에 7월 10일을 ‘욤 키푸르’(Yom Kippur)로 ‘속죄일’이라고 부르는 절기가 있습니다(레23:27).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회개는 반드시 금식을 필수로 여겼습니다(스캇 멕나이트의 금식 55페이지). 레위기23:27절에 “스스로를 괴롭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하나님이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레23:29).고까지 경고했을까요! 완전 금식이었습니다. 여기서 ‘스스로를 괴롭게 하다’는 문장에는 히브리어 ‘아나’(anah)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그 뜻은 ‘자기에게 고통을 가하다’혹은 ‘목구멍을 아프게 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이 완전히 떠나 버리신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은 영적 침체의 시기에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 금식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인 사무엘 시대에 블레셋나라에 언약궤를 빼앗기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제사장 엘리는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엘리에게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의미했습니다.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떠났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느리가 산통을 느끼며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이름이 이가봇입니다.

사무엘상 4장 22절에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라는 이가봇의 뜻입니다.

사무엘상 7장 이후로 넘어가보면 이 사태의 심각성을 통감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도록 촉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사무엘이 내린 처방이 무엇입니까? “미스바로 모이라!”입니다. 거기들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슬퍼하자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삼상7:6) 그리고 났더니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언약궤를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국가적인 도덕성의 위기

국가의 전쟁과 국가적인 총체적인 타락의 상황에는 금식해야 합니다.

욘3:5-10 5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들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성경에 중보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위대한 금식에 초대되었던 두분이 있습니다. 한분은 구약에서 한분은 신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들이 사이에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면서 금식했습니다.

신명기 9:17-21“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주 사십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너희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 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에 압도되었습니다. 거짓 신앞에 절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이렇게 분노할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40일을 금식하며 회중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신약에서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로 나아가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1-3“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께 나아와서 이르되…”

우리들에게는 집이 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도 있고, 따뜻한 히팅도 있습니다. 안락한 침대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금식하셨던 유대광야는 전혀 달랐습니다. 모래산들이 쌓여있고, 바위와 돌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초목은 없고, 낮에는 태양열이 발열했고, 밤에는 차가운 바람으로 온 몸은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금식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마가복음 2장을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나요?” 그때 예수님이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2:19“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왜 금식하지 않아도 됐지요? 예수님께서 대신 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2:19).

여기서 ‘그 날에는’초대의 의미입니다. 필수의 의미가 아니라 초대의 의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금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의 피로만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상을 받으려면 금식을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금식했습니다.

사도행전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금식은 주를 섬기는 태도입니다. 금식을 할 때 그 모습 그대로가 주님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금식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금식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경건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금식은 우리를 깨드려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만지실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수 있게 만듭니다. 영적인 일에 민감해지게 만듭니다.

금식하면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지고, 성령의 능력에 민감하게 됩니다.

금식에는 간절함이 담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자가 만납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놓치게 될 것들이 있습니다.

금식을 통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혜택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고 저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 친밀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식의 최고의 상급입니다.

실례 : 린치버그에 있는 리버티대학교 설립자인 제리 파웰의 책에서 본 글입니다. 한번은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이 급하게 5백만 달러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 인가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섬기던 교회 린치버그 버지니아의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로 가서 닷새 동안 전교인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1960년대에 5백만 달러를 일주일안에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제리 파웰은 매일같이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주님 저희 안에 비전을 주셨으니 저희가 그 비전을 위해 금식합니다.”금식을 시작한지 몇 주 만에 곳곳에서 이 사역에 후원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4주 만에 5백만 달러가 모였다고 말했습니다.

최순철목사 - 1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