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1-23,, 이사야 54:1-5

말씀 : 2012년 성탄절기념설교 / 임마누엘, 그 지경을 넓히는 법
본문 : 마태복음 1:21-23,, 이사야 54:1-5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사야 54: 1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기게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펴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살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젋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임마누엘 하나님. 구유에 계신 아기 예수. 베들레헴 구유로 한 사람 두 사람, 경배와 축하의 사절단들이 모여들었던 그 밤. 밤하늘을 수놓고 있던 별들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하늘을 날고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기쁨의 큰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탄카드에 그려진 그림들은 아름답고 좋아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주 예수 눌 자리없어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때 이스라엘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종교생활만 있을뿐 은혜생활이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의 글귀는 돌아다녔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사라졌습니다. 율법적인 의식은 있었지만 복음적인 감격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 이상 복음적인 몸부림이 없었기 때문에 순교도 핍박도 없었습니다. 그중에 몇 사람만 그루터기처럼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영혼이 구원받지 못했고,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자녀들을 낳는 영적인 어미같은 교회들이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한 사람이 이사야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 바로 그런 시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4장 전체의 주제는 잉태하지 못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재생산하는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 만족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하시리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수치와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라, 너를 지으시는 자는 네 남편이 되어 주시리라. 오늘 말씀에서는 비생산적이고 열매 맺지 못하는 계절에도 열매를 맺는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확장시켜가는 법,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뚫고 돌파하는 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장막터를 넓히라고 말씀합니다.

1)‘넓힘의식’입니다. 한번 따라서 하겠습니다. ‘넓히라!’, ‘넓히라!’. 옆 사람을 때릴 정도로 한번 손을 펼쳐 보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가슴에 새겨 넣기를 바랍니다. ‘네 지경을 넓혀 주리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품은 사람은 좁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작은 생각에 묶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너무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손을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을 본적은 없지만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한 줌이 얼마나 크신지 역사를 거슬러 보십시오. 작은 생각을 넓혀야 합니다. 좁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만남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는 의미입니다. 원수는 우리가 은둔생활을 즐기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관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서 큰 일을 행하시려 할 때는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게 할 실 것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는 새로운 동역자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지경을 하나님이 넓혀가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새로운 사람들을 우리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환영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면서 일어날 좋은 일들도, 어려운 일들도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 열린 사람이 지경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도전을 주고, 영감을 주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새로운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경의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자신과 비슷하게 성장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려 보십시오. 여러분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사용하셔서 여러분의 장막을 넓혀 주실 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말하십시다. “제 장막을 넓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한 사람을 만나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넗혀야 할 지경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지경을 통해서만 넓혀진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야만 넓혀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얻는 것이 지경을 넓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하기 편한 사람들과만 어울릴려고 합니다. 지경을 넓혀 가려면 불편한 사람들과도 어울릴 줄 압니다. 아니 어쩌면 불편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편안한 사이가 되어 가도록 힘쓰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장막의 터를 넓히라는 말씀은 불편한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의 터에 들어오도록 허락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속한 그룹이 너무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서둘러서 불편한 그룹을 찾아 나서시기 바랍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2) ‘펴라의식’입니다. 장막터를 넓힌 후 장막 안에 새로운 사람들, 불편한 사람들을 들어오게 한 후. 장애물을 허물고 널리 펴야 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스트레치’라고 했습니다. 기지개를 펴듯이 쫘악 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서로가 하나 되어 한 그림을 그려 가라는 것입니다. 구겨지지 말고 펴지라는 말입니다. 펴지 않고는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임마누엘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펴진자가 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구겨졌던 인생을 스트레치 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굳어졌던 영적인 근육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입니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영적인 사람으로 펴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이 지경을 넓혀 가는 법입니다. 마음을 펴여 합니다. 마음을 펴지 않고는, 손을 펴지 않고는 안을 수 없습니다. 품을 수 없습니다. 펴는 것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 고무줄은 펴지지 않고는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이 고무줄은 넓게 펴지는 만큼 긴장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넓히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관계를 싫어합니다. 새로운 관계를 어색하게 생각합니다. 편하게 있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기 원하신다면 이렇게 당기셔야 합니다. 펴져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연결되어 당겨져야 합니다. 하나는 내 손에, 다른 끝은 다른 사람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놔버리면 다치게 만듭니다. 상처받게 만듭니다. 놔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서로 놓을 수 없는, 나는 당신을 결코 포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의식이 생기는 순간부터 지경이 넓혀집니다. 축복의 지경이 넓혀집니다. 널리 펴지는 만큼 서로를 당겨줍니다.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더욱더 강력하게 끌어당깁니다. 이렇게 서로 고무줄을 잡아 당겨야 합니다. 긴장이 고조될지라도 잡아 당겨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넓어집니다. 느슨해지는 순간 풀어집니다. 느슨해지는 순간 흩어집니다. 서로 당겨주면서도 끊어지지 않을 만큼 그 간견속에 새로운 사람들, 불편한 사람들을 참여케 하면서 그 길을 늘려 가는 것입니다.

열정을 살아나게 하는 교회 더 성장하고 더 넓혀지기 위해서는 당겨줄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편리한 교회는 찾지 마십시오. 예배를 드릴 때 여러분의 마음에 불을 지펴줄 사람 곁에 서야 합니다. 아멘! 으로 화답하는 사람 곁에서 예배를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에 긴장을 줄 수 있는 공동체에 함께 참여 하십시오. 경건함을 당겨줄 수 있는 곳에서 함께 하십시오. 헌신적이고 신령한 삶을 살도록 당겨주는 공동체에서 함께 하십시오. 편안한 교회, 편안한 곳으로 가려 하지 마십시오. 편안한 곳으로 가는 것이 맞다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편안한 교회로 가려하지 마십시오. 뭔가 여러분이 당겨야 하고, 여러분을 당겨줄수 있는 곳에서 함께 하십시오. 그럴때 지경이 넓혀 집니다. 목사가 여러분을 피흘릴 정도로 힘들게 하는 교회인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저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목회할 수 있습니다. 쉽게쉽게 가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게 아닙니다. 우리들의 지경은 그렇게 넓혀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금식할때 흉악한 결박이 풀린다고 했습니다. 금식할때 좌우에 날선 성령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퍼져야 합니다. 우리가 퍼저야 합니다.

 

3)‘길이의식’입니다. 길이는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잠언에서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줄을 길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더 멀리 손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길이는 인간관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지경을 넓히는 비밀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모든 일에는 언제나 희생과 고난이 따릅니다.

4)‘말뚝의식’입니다. 말뚝이라는 말은 군대에서 나온 말입니다. ‘죽을때까지 함께 간다’는 의미입니다. 줄을 길게 하기 위해서는 말뚝이 견고해야 합니다. 말뚝을 깊이 박아야 합니다.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진리의 터에 깊이 박혀 있는 뿌리 깊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뽑히지 않는 말뚝이 있어야 합니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 말뚝이 있으면 버틸 수가 있습니다. 말뚝을 견고하게 깊이 박아야 한다는데, 어떻게 하면 깊은 말뚝에 붙들릴 수 있을까요? 첫째는 확신에 찬 결심입니다. 욥의 결심처럼, 다니엘의 결심처럼, 세친구들의 결심처럼 결심이 서야 합니다. 둘째는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이곳에 말뚝을 막았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리라!  이 말뚝을 지금 박아야 합니다. 결심해야 합니다. 결심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심령에 잘 박힌 못과 같은 진리가 새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을 향해 손을 뻗을때 내가 세상에 의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시겠습니다. 넓히자! 펴자! 길게 하자! 견고히 하자!

둘째로 휘장을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0: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휘장을 찢을 때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휘장이 찢어졌을 때 부활의 영광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이 끝이 났습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말뚝이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망치로 두들겨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환란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고난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휘장의 찢어짐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휘장을 아끼지 말고 찢어 내라는 것입니다. 지성소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에 뿌려진 용서의 붉은 피를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음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휘장이 찢어질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마음의 휘장이 찢어져야만 부활의 영광이 누려집니다. 내 마음의 휘장이 찢어지지 않은채로는 결코 지경이 넓혀지지 않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게 하려면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할렐루야!

최순철목사 - 12/2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