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산봉우리

누가복음 9장에는 변화산에서 생긴 신비로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변화산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과 제자들이 시대를 초월하고, 세대를 뛰어 넘는 거룩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대면이었습니다. 모세는 BC1250년대 출애굽 시대의 인물이었습니다. 엘리야는 BC 900년대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AD 30년대를 살고 계셨습니다. 변화산은 이처럼 시대를 뛰어넘고, 역사를 아우르는 빛이 있었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하늘이 빛이 비추는 곳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빛 가운데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계시는 주님을 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셨구나!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주님이 이처럼 위대하신 분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변화산 정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 가운데 안주하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막 셋을 하나는 예수님을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짖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말고 변화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셨습니다. 잠깐 동안 보게 된 변화산의 체험만으로도 제자들은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머물러 살아갈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그곳에 머무르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감람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람산은 겟세마네 동산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기 전날 새벽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바로 그곳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감람산의 기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감람산이 없이는 무덤이 열리는 부활의 영광도 없습니다. 감람산이 없이는 변화산도 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변화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람산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감람산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언덕 골고다를 향하여 첫 발을 내디뎠던 곳입니다. 그 첫걸음이 있었기에 부활의 영광이 예비되었고, 장차 변화산의 영광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게 변화산을 그리워합니다. 변화산과 같은 현실을 꿈꿉니다. 하지만 우리가 변화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야만 하는 감람산을 외면한 채로 변화산을 오를 수는 없습니다.

변화산위는 누구나 용서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변화산 아래 현실에서는 용서와 사랑이 어렵습니다. 변화산 위에서 따뜻한 웃음으로 서로를 포옹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변화산 아래서처럼 속을 뒤집는 현실에서 사랑은 어렵습니다. 천국은 성경 공식을 이해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성경적인 실제의 삶을 통해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를 좇아가는 자가 아니라 은혜를 적용하는 삶의 현장이 있어야 합니다.

최순철 - 02/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