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빗장을 풀고

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말씀이 편지를 받아들고 저마다 감동에 젖어들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비추어주는 꿈의 이야기, 소망의 이야기, 도전의 이야기 그리고 하늘의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2012년 새해는 어느 해보다도 아름다운 추억이 남도록 행복해지길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마음의 빗장을 풀어야 한다. 오늘의 나 되도록 삶의 뒤안길에서 희미하게나 추억으로 그려졌던 삶의 그림들. 책꽂이 낮은 곳 가장자리에 움쩍달싹 할 수 없을 만큼 끼어진 채 빛이 바래 버린 일기장을 꺼내들고 읽어보라.

누렁 코 소매 춤에 훔쳐가며 철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 볏짚 줄 돌돌 말아 공차며 몰려다니는 동네아이들, 냇가에서 둘러 앉아 우둘투둘 널빤지에 묶은 때 빨아내던 빨래터 어머니들, 골짜기 물길 따라 춤을 추며 흘러가는 낙엽들이 바위 앞에 어지럽게 맴을 돌다 손가락 노 되어 길을 터면 고맙다고 절을 하듯 한 바퀴 뱅글 돌곤 제 길을 떠나갔다. 가을바람 산들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물결치는 이삭들, 농부의 수고 진 이마에 구슬땀 흐르나 입가엔 미소가 드리웠었다. 알알이 들어찬 벼이삭들 고개 숙여 서로를 격려하듯 바람결에 비벼댔다는 이야기들이 담긴 내 추억의 일기장.

여름한철 벼 이삭 앗아가는 새떼를 쫓으려 새워둔 허수아비 속에서 십자가의 보혈을 보았다. 삶에 보혈을 적시라. 비탈진 산기슭에 뾰족감 한가득 매달고 늘어진 감나무처럼, 늦가을 새벽 찬 서리에 찢어진 살갗 새로 드러난 빨간 석류 알처럼, 새색시 시집가는 날 부끄러움에 붉어진 볼처럼, 기울어가는 한 해 멀어져 가는 겨울 태양 빛 붉은 노을처럼, 자식을 알알이 품고 대양을 건너 저 태어난 고향 길로 접어들며 온 몸을 붉게 물들여 가는 연어 떼처럼, 그대의 삶에 불같은 말씀과 보혈을 적셔라. 주님의 피로 붉게 물든 십자가 품고 성령의 열매 영글어 가기까지 새벽 찬 서리 마다않고 오늘도 내일도 기도 무릎, 감사 무릎, 돌봄과 사랑, 선행과 격려 무릎으로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허수아비 근성으로 끈기 있게 겨울을 돌파해내라. 한 번 벌린 팔 오므리지 않고 누구나 안아주는 그 사랑으로 모든 이를 품어주라. 거친 천위에 그려진 웃는 모습 모진 비바람 속에 젖어가도 지워지지 않는 웃음으로 세상을 웃게, 농부를 웃게, 이삭을 웃게 그리고 하늘을 웃게 하라. 때가 되어 알곡은 곳간에 들여지고 내가 꺾어지는 그날까지 피곤해 주저앉지 않고, 지루해 한 눈 팔지 않고, 외로워 가슴을 찢지 않고 우직함으로 살아가는 허수아비처럼, 사랑으로 띠를 두르고, 들녘을 지나는 나그네의 벗으로 살아보라. 언제나 같은 모습, 같은 미소, 같은 가슴으로 한 번 선 그곳에서 움직임 없이 흔들림 없이 한결 같은 손길로, 구김살 없는 얼굴빛으로 그렇게 살아보라. 그런 그대의 새해는 반드시 희망과 열매가 넘칠 것이다.

최순철 - 0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