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4장 1-6절 말씀

말씀 : 오르라, 그 바위 사이로
본문 : 삼상 14장 1-6절 말씀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명 가량이며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들어가는 말> 복음을 전해야 살아난다. 조용하게, 확신있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놓치지 말라.
실례 :2001년 10월 1일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이상한 전쟁’(Asymmetric Warfare)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이 칼럼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붕괴 참사 이후 미국의 좀더 낮아지고 겸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적고 있었스니다. 강한 힘과 앞선 기술을 내세우는 하이테크(high-tech)가 힘과 기술에서 뒤진 로우테크(low-tech)를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블레셋 골리앗은 당시 중무장한 하이테그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던진 돌맹이라는 로우테크에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로우테크는 모래위의 지어진 집과 같은 것입니다.
칼럼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나이프 하나로 무너트렸다고 적고 있었습니다. 승무원을 위협했던 나이프 하나가 조종사를 움직였고, 비행기를 움직였던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부분에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오늘 성경을 보면 다윗의 로우테크가, 골리앗의 하이테크를 이긴 승리의 사건 이전에 있었던 비슷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로우테크가 원수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하이테크를 정복하는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야기보다는 로우테크가 하이테크를 이기를 있는 비결을 쉽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밖에 없는 로우테그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론>
BC1051년. 이스라엘 역사 최초로 나이 40세의 사울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위에 오른지 2년째 되던 해. 블레셋나라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사해 바다 북서쪽에 위치한 믹마스라는 곳에 진을 친 블레셋 병거는 삼만 병거에 마병이 육천이나 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믹마스보다 저지대에 위치한 게바라는 곳에 진을 쳤지만 아직 창 칼 조차 제대로 없었습니다. 삼상13:22“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서로 대치하고 있는 지형마저 불리했습니다. 블레셋은 고지대를 점령하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구멍에 갇혀 있는 것처럼 아주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삼상14:11“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조롱했습니다.
로우테크가 하이테크를 어떻게 이겨내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로우테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6절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1) 할례받지 않은 자들을 향한 진단 / 아군이 아이었다.
실례 : 요즘 교회가 어려워지는 이유 / 아군끼리 자폭하기 때문.

사실 무모한 싸움 갔습니다. 무기도 없이 병거 삼만대와 마병 육천을 상대한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길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이 전쟁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 수밖에 없는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무장한 확신은 숫자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길수 있다고 확신 한 것입니다.
원수가 아무리 고지대를 점령했어도, 중무장을 했어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라며 무서워 할필요가 없습니다. 때때로 원수는 우리보다 더 높은 고지를 점령한 것처럼 보일때가 있습니다.

둘째, 먼저 작은 표징을 구했습니다.
삼상14:8-10“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 그들이 만일 우리가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달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 그들이 만일 할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랬더니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하고”(11-12절)
요나단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아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쟁인지 아닌지 먼저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블레셋 병사들이 자신을 향해 내려오면 싸워서는 안되는 것이고, 저들이 자신을 올라오라 하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전쟁이라’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도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을 배우고 확신에 거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3년 반동안 비가 오지 않던 땅에 비가 오게 될 것을 기도했습니다. 일곱 번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일곱 번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작은 손바닥 만한 구름이 하늘에 떴다는 것을 확인한후 소낙비가 내릴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비가 내리는 소리를 미리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주 작은 돌파구라도 만들어졌다면 작은 구멍이라도 생겼다면 저 높은 고지로 올라갈 수 있는 승리의 길, 기적의 길인줄로 믿고 머뭇거리지 말고 기어 올라 가십시오.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작은 역사가 일어났을지라도 큰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승리가 큰 승리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승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 큰 승리도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장에 작은 승리를 보셨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의 재정 문제에서 작은 승리를 보셨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 다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자세가 여러분을 재기하게 하십니다.

셋째로 두 바위 사이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4절“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바로 보세스의 길이요, 세네의 길입니다. 보세스는 “빛나다”라는 뜻입니다. 세네는 “가시돋힌”이라는 뜻입니다.
빛이 나는 바위와 가시돋힌 바위였습니다. 해처럼 빛나는 영광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가시받길로 함께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이 그렇습니다. 변화산에서 영광의 광체로 둘러 쌓이셨던 주님을 만나려거든 먼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고 땀방울에 피가 흐르도록 간절히 기도하셨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바위 사이를 올라가고자 하면 하나님은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는 빛나는 바위였고, 하나는 가시돋힌 바위였습니다. 그 사이로 길을 따라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반석이셨습니다. 태양처럼 빛나는 반석이셨습니다. 밤하늘의 별빛조차도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을 이끌고 와서는 아기 예수로 누우신 구유위로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은 빛나는 반석이셨습니다.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영광의 빛으로 가득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갈보리에서 돌아가실때는 머리에 가시관을 두르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빛’과‘가시’사이에 서게 됩니다. 밝고 활기찬 부흥과 성장의 길에 있다가도 가시밭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설령 가시밭기를 만날지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곳에 계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빛 가운데 오셔서 가시를 두르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무덤의 권세를 깨뜨리고, 지옥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기에 여러분도 힘든 장소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도 건너가야 할 길이 있을 것입니다. 건너편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길을 지나야만 합니다. 높은 고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려운 길을 지나야만 합니다. 어려운 길이 어떤 길입니까? 힘든 길이 어떤 길입니까? 이 말씀은 여러분의 모든 상황에 적용되어야 할 놀라운 말씀입니다. 어려운 길을 지나지 않고는 고지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저히 더 이상 갈 수 가 없습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너무나 슬픕니다. 괴롭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로잡히고 있다면 요나단처럼 생각하십시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로우테크가 하이테크를 이길수 있다.”
요나단은 힘든 장소에 붙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통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심했습니다. 이미 지옥같은 어둠을 지나고 있자면 그 만큼 빛에 가까워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조금만 더 전진하면 될 것입니다. 10미터만 더 가십시다. 거기서 포기하지 마세요. !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하신다면 그 사건이 지금 나를 위해 말씀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확신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내 상황속에, 내 사건속에 초청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삼상17:45“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이것이 바로 보세스라는 바위를 오르는 법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의 이름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시고 쓰러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넘어지셨습니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넘어지시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기쁩니다. 우리들도 사명의 짐이 무거워 넘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넘어질 때에 하나님은 언제나 누군가를 보내셔서 십자가를 다시 일으키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의 무거운 짐으로 넘어질 때에 주님께서 우리들을 보내셔서 여러분을 일으켜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이 바위 사이에서 죽지 않으리라! 너는 고지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

요나단이 블레셋 부대가 있는 곳으로 건너가고자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역경은 최고의 신학교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신학교에서 회개를 배웠습니다. 사흘길을 걸어가면서 외쳤던 메시지로 12만 명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했습니다.
요즘 교회들마다 역경이 찾아옵니다. 우리 교회도 역경을 경험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역경은 우리로 하여금 고지로 올라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무거운 짐에 넘어져 보니까 돕는 손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역경은 저에게 말씀을 주었습니다.
역경은 저에게 치유를 알게 하셨습니다. 역경은 저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도 역경이 없이 않을 것입니다. 아픔을 겪지 않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아픔이 와도, 역경이 와도 우리는 올라 갈 것입니다. 그 올라감을 멈추지 않기만 하면 반드시 그 다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의 문을 닫으시면 또 다른 문을 여십니다. 그렇지만 닫히는 시간과 새로운 문이 열리는 시간은 지옥과 같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무척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어떨때는 3개월동안 열리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6개월이 지나도록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때가 바위 사이에 끼어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원수는 포기하라고 속삭입니다. ‘수건을 던져, 백기를 들란말이야!’

넷째, 손과 무릎으로 기어 올랐다는 것입니다.
손은 찬양, 봉사, 섬김의 손이며, 무릎은 기도의 무릎을 의미한다.
모든 찬양하는 일에나, 봉사와 섬김의 장에는 언제나 빛나는 바위가 있으면서도 가시돋힌 고난의 바위도 기어 올라야 합니다. 기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는 장소를 알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14장 13절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그 길을 통과할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무릎으로 기어가는 것입니다. 찬양하기 위한 손과 기도하기 위한 무릎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고지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손을 들어 찬양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의 역사속에는 언제나 이 두가지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손을 내밀어 찬양하는 것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말렉을 물리칠 때 여호수아의 손이 춤을 추었습니다. 모세의 무릎이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손을 들어 찬양을 시작하는 순간,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 역정은 여러분을 빛나는 사람으로 다듬어 갈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시체를 돌무덤 사이에 가두려고 했습니다. 돌로 판 무덤, 돌로 된 문으로 봉인을 했습니다. 병사들이 지켰습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났습니다. 돌문이 굴려져 내려갔습니다. 지키던 자들이 엎드러졌습니다. 주님이 살아나셨습니다. 가시덤불같은 바위속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게 될 희망입니다. 고지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지로 올라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 말씀이 누구를 위하여 전하는 메시지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환란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은 역경을 이겨낼 것입니다. 다같이 따라 해 주십시오. “나는 고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 이 시간이 나의 복귀의 시간입니다. 나는 전진합니다. 멈추지 않겠습니다.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습니다. 나는 고지를 향하여 올라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흑암 중에 보화를 감추어 둡니다.
우리는 흑암을 싫어하지만 하나님은 흑암 중에 보화를 감추어 두십니다.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이사야 45:3)
보물은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 하이브리드 자원을 건질 수 있습니다. 땅속 깊은 곳에 기름을 체취하듯 보화는 깊은 어둠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화를 찾기 위해서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해변가에 서성거리면서 놀려는 사람에게는 결코 보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흑암중에서 성장하게 하십니다.
나무의 뿌리는 어두움속에서 자랍니다. 우리가 가꾸고 키워야할 것은 사실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하는 사람의 마음이 성숙한 마음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지켜내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광야라는 흑암속에서, 감옥이라는 흑암속에서, 굴이라는 흑암속에서도 묵묵히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을 품을줄 아는 사람이 보화같은 미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세례요한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광야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감옥에서 성장했습니다. 굴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포로생활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이 모은 상황이 바로 흑암의 골짜기였습니다.

최순철목사 - 01/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