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힘

새벽예배를 인도하러 가는 중이었다. 신호등이 빨간불이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신호등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차가 있었으나 1초간 멈추었다가 출발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몇 해 전 바로 그곳에서 용서받은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경찰을 통해서 신호위반에 따른 티켓을 받아야했는데 경찰이 주의만 주고 보낸 준 것이다. 심판을 받아 범칙금을 내야했는데 용서받은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만 신호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운전하는 모든 곳에서 신호를 잘 지키는 모범 시민이 되었다. 한 번의 용서가 내 삶의 상당한 부분을 따뜻하게 했다.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졸다가 위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용서의 힘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의 모습은 분명 예수를 통해서 받은 용서의 힘이었다. 일만달란트를 탕감 받은 것이 저들의 가슴에 실제가 되었기 때문에 백데나리온 빚진자 같은 이웃들을 위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달려갈기를 다 달려가도록까지 복음을 멈출수 없었다. 저들의 생애 전체를 통틀어 복음이 전부였다. 때로는 시험에 빠지고 환난을 당해도 이보다 더 큰 사랑의 빚이 컸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용서의 힘이다.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넓은 마음을 갖게 한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12:16).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성도란 용서받은 사람이다. 용서받은 사람이 지녀야할 덕목은 용서의 힘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용서를 통해서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 용서할 줄 아는 힘의 크기가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크기인 것이다.  용서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신실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운 시절이다. 용서하지 못한 채 앙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의 속을 상하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사첼 페이지 형제의 말처럼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자. 물론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 사려깊은 인품으로 가꾸고 다듬어 가는 것도 힘써야 하겠다.

최순철 - 01/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