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5:11-12

말씀 :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3) / 경계선 넘어 새로운 식단으로
본문 : 여호수아5:11-12

실례 : 물은 100도가 되어야 액체가 기체로 바뀝니다. 그것을 과학에서는‘끓는 점’이라고 부릅니다. 99도에서는 끓지 않습니다.
모든 나무들은 나이테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테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가? 어떤 환경을 견디어내면서 성장했는가를 볼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워져 가는 데는 개개인마다 신앙생활의 나이태들을 만들어갑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서 마디를 만들면서 자라갑니다. 이렇게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디딤돌로 쓰임 받았던 귀한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과거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걸림돌이었던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그런데 달라진 것입니다. 변화된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로 / 변화되기전 바울은 사울이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걸림돌이었습니다. 하나님나라에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약의 모든 사도중에 뛰어난 사도가 되었습니다. 시몬이 베드로로 / 어부였었던 시몬 베드로는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여전히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원수들은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는 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습니다. 99도를 넘어 서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습니다. 하지만 그 경계점을 뛰어 넘어선 것입니다. 가로막음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넘어선 것입니다. 어떻게 넘어설수 있었을까요? 오늘 말씀이 그 단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 요약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고 이제 가나안 정복전쟁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유월절을 지나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5장 11-12절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순간을 기다려왔습니다. 이 순간을 위하여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그 땅에서 얻은 소출로 양식을 삼는 순간부터 진정한 가나안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식단의 변화
제가 주목한 점이 있습니다. 모든 식물이나 동물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식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다음 단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식단에 변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백성을 만들어 감에 있어서 세 가지 식단을 걸쳐가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애굽의 식단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부추와 마늘과 양파를 먹었습니다. 이것은 억압의 음식이었습니다. 속박의 음식이었습니다. 노예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입을 열기만 하면 냄새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 애굽의 식단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야곱의 70명 가족들을 60만 민족으로 만드셨습니다. 애굽의 식단을 통해 백성만들기를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마늘과 양파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훈 / 마귀는 여러분의 내면의 세계가 마귀의 노예인지 하나님의 자녀들인지 입술로 풍기는 냄새로 쉽게 알아봅니다. 약3: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성도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고후2:14-16“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그리스도인의 향기는 사람을 살리는 냄새라는 말입니다. 삶이 향기로운 사람은 생명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모세를 통해서 광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거기서 두 번째 식단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광야의 식단입니다.
출애굽16:14-15“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시는 양식이라”
만나는 광야의 음식이었습니다. 만나를 먹어야만 애굽의 냄새나는 노예의 결박을 풀수 있었습니다.
만나는 노예의 의식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의식으로 바꾸어 가는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식단에서 십계명을 법으로 주셨습니다. 성막을 주셨습니다. 삶의 질서가 잡혀갔습니다. 새로운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성막을 통해서 예배를 배웠습니다. 만나를 먹었던 사람들에게 마라의 쓴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만나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양식이었습니다. 별세의 양식이었습니다.
광야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생활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뭔가 생소한 단어들을 듣습니다. 새로운 만남이 연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광야의 식단입니다. 세례를 받으셔야지요? 이게 뭐지요? 이것이 바로 만나와 같은 뜻이지요. 금식기도를 하십시다. 그게 뭔데요? 만나입니다.

원수는 만나를 맛없는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자꾸 애굽의 양파와 마늘을 생각나게 합니다.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자입니다. 더 이상 마귀는 우리를 옛날로 돌아가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99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 하지만 우리는 멈출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애굽을 벗어나 광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통과하여 정금같이 나아가는 축복의 문으로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99도에서 이제 100도씨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 식단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는 가나안의 식단입니다.
오늘 말씀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여호수아 5장 11절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애굽의 식단은 백성만들기의 양식이었다면, 광야의 만나는 주권만들기의 양식이었습니다. 이제 가나안땅의 양식은 어떤 양식이었을까요? 바로 영토만들기의 양식이었습니다.

끓는 점을 넘어서라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광야로 가는 길목에 홍해가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요단강이 있었습니다. 구름기둥 아래 머물게 하시면서 바다를 지나고 강을 지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고전10:1-4“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만나를 가리켜 ‘신령한 음식’이고, 반석에서 나는 물을 가리켜 ‘신령한 음료’라 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상징하고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개인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면 구경꾼이 아니라 광야의 식탁에 주인공이 되려면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는 말씀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회계를 의미합니다.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었어요. 베드로가 어떻게 디딤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닭이 울 때, 베드로도 울었다는 것입니다. 회개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 주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세 번의 사랑을 선언하셨습니다. 요21:15“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늘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메섹의 길을 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 사흘 밤 낮 어둠속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죄를 보았습니다. 회개했을 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롯 유다는 후회로 끝나버렸습니다. 99도 앞에서 포기한 것입니다. 경계선을 넘지 못한 것입니다.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백성들을 가나안의 식단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광야의 식단을 넘어 가나안의 식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두가지 장벽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요단강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단강도 여리고성도 한가지 방법으로 뛰어 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법궤를 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법궤가 비밀입니다. 법궤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죄에 대한 심판과 용서, 사랑과 은혜를 동시에 담고 있는 신비로운 복음이었습니다.

경배하라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향해 걸어가기 전에 먼저 그가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 경배의 시간은 낭비가 아닙니다. 여리고에게 대적하기 전에 경배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그에게는 작전도 없었고, 전략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경배를 드리는 동안 작전이 생겼습니다. 전략도 생겼습니다. 경배를 통해서 주신 전술과 전략은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시간을 드릴 때에 여러분을 약속의 장소로 인도할 새로운 명령들을 주십니다. 그들이 약속으로 땅으로 들어가려할 때 가장 먼저 걸림돌이 된 것은 여리고 성벽이었습니다. 그 성벽은 우리에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기가 당신들의 인생의 끝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런 성벽앞에 가로막혀서 서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중독의 성벽이었습니다. 우울증의 성벽이었습니다. 두려움의 성벽이었습니다. 가난의 성벽이었습니다. 추방명령의 성벽이었습니다. 직장에서 거절당한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성벽이었습니다. 성경은 적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오고 있다는 것을 듣자마다 성벽을 굳게 걸어 잠궜다고 말씀합니다. 약속에 가까워질수록 원수는 성을 더 강하게 걸어 잠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99도를 넘어 100로 올라가려면 지속적으로 불을 지펴야 합니다. 그것처럼 99도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나아와야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경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며, 기도하며 소리높여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수 있는 강력한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해야 합니다.

최순철목사 - 0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