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7:45-46

말씀 : 2013년 사순절 가상칠언(4)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본문 : 마태복음 27:45-46 / 찬송 / 403장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 시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내향성 어조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하듯 하라. 시간을 아끼라. 선포하라.
마지막 시험
실례 : 자녀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준비가 잘 된 과목은 그래도 실력을 보여줄 기회라 생각해서 시험에 주눅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준비가 안 된 과목의 시험이 있는 날은 학교조차 가기 싫습니다. 시험에 든 것입니다.
2천년전 예루살렘에서는 지상 최대의 시험이 치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온 인류를 죄 가운데서 건져내어 빛 가운데로 옮겨 놓느냐 실패하느냐 였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시험 앞에 홀로 시험 문제에 답을 달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험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이 아름답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임종의 모습에서 그분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그 비전과 목적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은 비극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의 마지막 승리의 말씀이 선언되었던 십자가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분의 삶을 배우기 위하여, 그분이 어떻게 이기셨는지 그 음성을 듣고자 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통해 흐르는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결같은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치유하여 사랑 가득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예수님의 삶 전체가 버림받으심으로 얼룩졌고, 외로움이 가득한 삶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자신을 붙잡아 핍박하려하는 무리들속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들에게 붙잡히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붙잡혀 주신 것입니다.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뭔가를 치유하고 회복시켜서 남은 생애를 능력이 있게 살게 하시려고 붙잡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치러야 할 죄의 대가를 예수께서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을 보면 그 값을 지불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아무 말없이, 이유를 묻지 않고 지불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옷이 찢겨져 나가는데도, 마지막 남은 속옷까지 벗겨져 나가는데도, 주님은 잠잠히 부끄러움을 당하여 주셨습니다.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한데도 묵묵히 침묵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이런 영적인 무게를 지닌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라면, 성도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부끄러움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여러분을 덮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이 가리어지고 의로움이 덧 입혀졌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네 번째 말씀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죄수를 감옥에 넣는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크기에 따라 감옥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르고 무거움이 다릅니다. 독방에서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형수는 입는 옷도 다르고 명찰도 다릅니다. 죄의 무거움에 따라서 그 형벌이 다릅니다. 오늘 말씀에도 주께서 지불하신 두 가지 값이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지불된 순간 저와 여러분들은 이것들로부터 자유합니다. 이것들이 더 이상 여러분의 삶을 묶을 수 없습니다.
찬양 /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충하리이다”할렐루야!
주님이 청산해주신 그 두 가지 죄 값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는 어두움입니다.
45절“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3시간 동안 어둠이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해가 빛을 잃어버리는 초자연적인 어둠이었습니다. 어둠은 쫓겨난 자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갈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30) 여기서 말하는‘어두운 데’는 지옥을 의미합니다. 지옥은 온갖 비명소리, 고통으로 절규하는 신음 소리, 그리고 또 다른 소리가 있습니다. 바로‘이를 가는 소리’입니다. 어둠의 고통이 얼마나 크면 이를 갈며 슬피 울까요?
어두움은 예수께서 지불하신 죄값으로서의 어두움이었습니다. 어둠을 성경적으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1) 창조 전 흑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그런데 하나님이 운행하시면서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던 세상에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을 만드신 아버지께서 오늘은 예수께서 네 번째 말씀을 하시기 전에 빛을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흑암이 깊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지옥의 어두움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2) 삼일간 흑암이 있었던 애굽
출애굽기 10:2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저는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확신한 것이 있습니다. 지옥은‘서로 볼 수 없고, 더듬을 만한 어둠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흑암의 재앙입니다. 3일간이나 계속되는 어두움이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죽어서 그 피가 문설주에 발라지기 전 까지 짙은 어두움이 3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유월절 양이 죽기 전에 찾아온 어두움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의 삶은 어둠에 속한 삶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여러분의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3) 삼일간 스올의 뱃속에 있었던 요나
요나 1:17“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요나 2:2“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어셨나이다”3절“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6절“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물고기 뱃속은 이미 스올이 었습니다. 스올은 죽은 자들이 가는 무덤을 가리킵니다. 요나는 스올에 갇혀 있었습니다. 요나를 삼켰던 물고기 뱃속이 바로 그런 어두움속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고기가 바닷속 깊은 곳, 땅이 닿는 곳까지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이 물고기를 가두어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밑바닥의 어둠은 어떤 어두움이었을까요? 요나가 그곳에서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요나 2:6), 부른뒤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예배(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2:9).
1) 감사합니다. 2) 예배드립니다. 3)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속하였습니다. 이 세가지 고백을 하고 났더니 욘2:10“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했습니다. 회개한 요나를 어둠이 더 이상 가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최순철목사 - 03/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