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3:28-32

성벽재건의 역사를 이처럼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그 사건 속에서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영적인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벽에는 겉으로 드러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문과 망대와 울타리입니다. 드러난 세 가지 요소는 감추인 영적인 원리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들이 됩니다. 이 세 가지 필수 영적원리는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이 세 가지 영적원리를 점검하고 약한 부분은 훈련을 통해서 강화시켜야만 합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와 영혼을 깨우는 순간… 법궤 앞에 놓인 아론의 죽었던 지팡이에 싹이 돋았던 그 새벽녘의 역사처럼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는 이 하루가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성벽의 세 가지 요소 중 첫 번째 일곱 개 문들의 영적 의미를 함께 듣겠습니다.

일곱 개의 문

문에는 평범한 문과 특별한 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드는 가장 특별한 문은 은행 금고의 문일 것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은 문안과 문 밖을 구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안과 밖을 통하게 하는 소통의 의미도 있습니다. 성벽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습니다. 문마다 영적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양문입니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3:1 )

양의 문은 하나님께 바칠 제물들이 들어가는 문이었습니다. 양문은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하십니다. 양문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 예수! 죄인 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들어가시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양문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성벽재건은 양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양문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양문은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했습니다. 양문을 성별하라는 의미는 예배의 거룩 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사라져버린 예배! 제자의 도가 증발해버린 성경공부! 사랑이 매말라 버린 맹목적인 섬김! 자기 의를 내밀려는 회칠해진 사역과 봉사! 자기부정과 자기죽음이 없는 훈련! 자기 십자가조차 지지 않는 지도자! 이것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현실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에 “제자 삼는 사역이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기를 “죽음에 이르는 훈련이다!”고 했습니다. 에스더는“죽으면 죽으리라!”,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칠배나 뜨거워진 풀무 앞에서“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리라!”외쳤습니다. 이것은 자살이 아닙니다. 미리 죽는 결단이며 죽기 전에 죽는 경험입니다. 미리 죽는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세상의 위협이나 두려움이 범접할 수 없는 거룩의 영역이 자기 죽음을 선언한 겸손의 영역입니다. 죽고도 살았으니 다시 죽을일이 없고 이미 죽었으니 교만할 일도 없습니다.

성도의 영혼에는 양문이 있어야 합니다. 양문은 예배로 들고 납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예배의 회복이 가정의 회복이고, 곧 나라의 회복입니다. 그 어떤 고난 중에도 예배를 시작하면, 저절로 거룩의 과정에 놓이게 됩니다. 예배 가운데 나아오는 것이 바로 법궤 앞에 놓인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배를 외면하면 하나님과 소통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죽은 자만이 예배 앞에서 영혼에 생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어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소통입니다.

어문은 하스나아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3:3)

어문을 만든 이유는 이 문으로 생선들이 들어왔습니다. 어문 지역에 물고기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더불어 갈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어문은 가난한 심령을 품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어문은 소외된 사람들과의 소통하라는 의미입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라는 적극적인 도전의 의미입니다.

어문 건축을 건축한 사람은‘하스나아’의 자손들입니다. 하스나아는‘증오, 미움, 가시가 많음’을 뜻합니다. 어문을 증오심많고, 미움을 품고 살아가는 가시돋힌 사람들에게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내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내 이웃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되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는 어문을 가져야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성 사람들을 증오했습니다. 미워했습니다. 니느웨성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에 가시가 돋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저들을 구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요나가 불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물고기를 잡야 하는 어부가 오히려 큰 물고기에게 삼켜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빈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서 물고기와 함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성도에게는 물고기가 들어오는 어문이 있어야 합니다. 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이 들고 나는 문입니다.

그리고는 특이하게 어문을 이어서 울타리를 세운 사람들은‘학고스’(가시나무)의 손자, 우리아(여호와의 빛)의 아들 ‘므레못’(높아지다)이 중수하였습니다. 하스나아도‘가시가 많음’이고, ‘학고스’는 ‘가시나무’입니다. 양문과 어문은 건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중수하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건축은 ‘build’이고 중수는 ‘repair’입니다.

 

3) 옛 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건축이 아니라 중수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어로는 repair입니다.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3:6).

옛 문은 옛것과 새것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과거 역사와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소통의 의미합니다. 옛 문은 지난 역사를 기억하는 문입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기 전에 있었던 과거의 문이었습니다. 낡았지만 그곳에 항상 있었던 문입니다. 옛 문을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느3:7)이 보수했습니다.

여호수아 군대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어떻게 태양을 멈춰 세우셨는지 그 과거역사를 기억했던 기브온 사람들입니다. 블레셋나라가 침략했을 때, 선지자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그곳에서 금식하며 미스바대각성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큰 우뢰가 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레소리와 함께 블레셋 군대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우레소리를 기억했던 미스바 사람들이 그 과거 역사를 되새기면서 옛문을 보수했습니다. 옛 문의 흔적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던 첫사랑의 흔적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가 이제 처음 사랑을 찾으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옛 문의 의미를 날마다 되새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은혜가 떨어진 곳, 사랑이 식어지게 된 곳에서 옛 문을 보수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2:3“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4) 골짜기 문입니다.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하였고”(3:13).

골짜기 문은 고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성도를 훈련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성도는 고난을 해석하는 영적인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고난은 해석되지 않으면 고난이지만 해석되면 축복입니다. 고난의 깊은 뜻을 모르는 사람은 피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고난의 깊은 뜻을 알면 스스로 뛰어듭니다. 성도는 골짜기 문을 가져야 합니다. 고난과 소통할 줄 아는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고난이 무엇입니까? 고난이란 거듭난 생명이 죽음의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고 평강을 누리는 그때까지 항쟁하는 몸부림입니다. 내가,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고난 속에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반증입니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듭니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 고난을 견디면 생명은 반드시 성장한다. 성도는 핍박을 받을수록 대적을 포용하는 관대함을 배워가고, 궁핍과 형벌을 참음으로 자유와 고귀를 얻어낸다. 고난이 주는 손해와 아픔은 한때이지만, 고난이 주는 보람과 뜻은 영원하다.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은 십자가 고난의 짐을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겪는 고난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실례 : 새들은 폭풍 앞에서 바위틈을 찾아 숨기에 다급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폭풍이 불어 올 때 꿈틀거립니다. 피하지 않습니다. 독수리에게 폭풍은 자신의 힘으로 날수 없는 높은 하늘을 나는 힘이 되어줌을 압니다. 세상에 태어난 인류 중에 가장 깊은 골짜기를 들어가 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2:2“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스올의 뱃속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깊은 곳이었습니다.

2:6“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골짜기에서 생긴 일은 과거를 청산하는 일이었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우리에게 더 이상 죄로 얼룩진 과거는 없습니다. 과거의 모든 자랑거리도, 부끄러운 죄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혔습니다. 이제 누구도 과거로 인해 스스로를 침체나 절망에 빠트리지 못합니다. 내가 침체에 빠지는 것은 나 스스로의 생각이며, 나 스스로의 무너짐입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해도 하나님이 침묵하실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업을 하는데도 벼랑 끝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실패를 경험할때가 있습니다.

어두운 밤 잠을 잘 수 없을만큼 가슴이 타들어가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최선을 다하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또 뿌려야 할때가 있습니다.

상처를 받을때가 있습니다. 가슴 아픈 소리로 울고 또 울어야 할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데도 버림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영에 속한 우리는 이런 시련 속에서 생각나는 말씀이 있어요. 이런 실패 속에서, 고통 속에서, 상처받은 현실 속에서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픔입니다. 예수님의 외로움입니다. 제자에게 배신당하신채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가시는 주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도 상처받으셨습니다.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더더욱 신기한 것은 그저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의 아픔을 생각했을 뿐인데, 오늘 내 앞에 놓인 아픔이 치료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상처속에서 흘러나오는 보혈이 내 아픔, 다른이들의 아픔에 싸매여지고 치료되어갑니다. 찍혀도 찍혀도 향을 뿜어내는 향나무처럼 십자가의 상처속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움은 고치지 못할 아픔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23:10)

실례 : 북경에 청화대학이 있습니다. 1911년 중국국가교육부 중점대학으로, 중국 이공계분야 최고의 대학 1위입니다. 북경대학과 함께 세계 10대 대학중의 하나입니다. 세계 최대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생명과학, 에너지, 컴퓨터 및 정보, 환경 분야에 최고를 달리고 있습니다. 1975년. 중국 13억 인구 중에 이 대학에 전 학년 장학생으로 뽑힌 아이큐 175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던 어느 날. 자기 자전거에다가 전도지를 꼽는 한국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도 감시가 심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도를 하다가 걸리게 되면 감옥에 가야하고 전도를 받는 사람까지 위험한 때였습니다. 자매는 쪽지 전도지를 받아들고 읽다가 울게 됩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을 일어났습니다. 그 날부터 9개월 동안 은밀하게 활동하는 타국의 선교사님들의 도움으로 양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자매였습니다. 지하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지하교회를 돌면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자매가 사라졌습니다. 삼개월만에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자매를 본 선교사님들은 깜짝놀랐습니다. 고문당한 흔적으로 몸이 완전히 망가져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의 죄수들에게 … 한국선교사님은 ‘그때 내가 네 자전거에 전도지를 넣고 있지만 않았었더라면 네가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텐데…’이에 자매는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그래도 선교사님! 저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고개를 숙인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찬미1500 / 1690 1. 어둠속에서 주님을 만나네 사랑의 주님을 / 푸른 초장에 피곤한 영혼을 누이셨네

2. 눈물속에서 주님을 만났네 사랑의 주님을 맑은 물가로 목마른 영혼을 인도했네

후렴; 이제 다시는 외롬도 두렴도 없으리 오 주님이 나의 참 목자되시니

어둠속에서 주님을 만났네 사랑의 주님을 맑은 물가로 목마른 영혼을 인도했네

 

최순철목사 - 0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