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3:14-15, 28.

조디 윌리엄스는 지뢰 사용 금지를 가능케 한 공로로 199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은 놀랍게도 세계 5대 강국의 반대속에서 이루어낸 쾌거였습니다. 세계 1000여개의 인권단체와 군비통제단체를 조직화해냈습니다. 이 한 사람이 5대 강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선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함으로 관계를 소통케하는 성과를 거둘수 있었던 조디 윌리엄스의 무기는 바로 ‘이 메일’이었습니다. 집에 앉아서 이 메일 하나로 1000여개의 단체를 하나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이는 안개속을 걷고 있습니다. 누가 적군인지, 누가 아군인지 모를 상황속에 살아갑니다. 다원주의 사상이 세상을 휘젖고 있고, 새시대운동이 안방을 점령했습니다. 아니 온인류의 가치 체계를 초토화시켜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미 세상은 바다에서 닻이 꺽인채로 표류하는 시대에 접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류하는 시대에 표류하는 인생들에게 소원의 항구로 향해 당당히 노저어 갈 수 있는 선명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변함없이 믿고, 삶을 맡길만한 ‘확실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성벽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일곱 문과 네 개의 망대와 울타리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일곱문중에 네 개의 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 째는 양문이었습니다. 양문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문입니다. 예배의 문입니다. 성도의 삶은 하루하루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할 예배의 삶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시간을 어디서 보내려 하십니까? 지옥이냐 천국이냐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천국을 선택했다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예배의 삶입니다. 하루하루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드립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구별된 삶을 살아갑니다.

두 번 째는 어문이었습니다. 어문은 ‘물고기 문’입니다.‘물고기’는 구원받은 성도를 상징합니다. 마음에 천국이 임한 심령이 가난한 영혼들이 소통하는 문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영혼들과 소통하는 구령의 문이요, 전도의 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 째는 옛문이었습니다. 옛문은 ‘과거 역사를 통해서 오늘을 새롭게 하는 간증의 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안드레가 형 시몬에게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몬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시몬을 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이름을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반석’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분명한 신앙고백의 옛문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가 떨어지고 신앙의 침체 가운데 빠졌던 엘리야가 찾아 간곳은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습니다. 호렙은 모세가 하나님을 뵈었던 곳입니다. 옛 신앙의 선진들이 하나님을 뵈었던 옛문이 있어야 합니다.

네 번 째는 골짜기문이었습니다. 골짜기 문은 고난과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성도를 훈련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성도는 고난을 해석하는 영적인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고난은 해석되지 않으면 고난이지만 해석되면 축복입니다. 고난의 깊은 뜻을 모르는 사람은 피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고난의 깊은 뜻을 알면 스스로 뛰어듭니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듭니다.

오늘은 나머지 세 개의 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섯 번째는 분문입니다.

분문은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3:14)

분문은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을 버릴 때 사용하는 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분문은 회개의 문입니다. 골짜기에서 고난을 다루는 실력을 길러내고 늘 보수해야 하는 것처럼, 분문을 통해서는 죄를 다룰줄 아는 회개의 능력과 죄와 싸워 이기는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비결을 지녀야 합니다.

일만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나! 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분문을 보수한 사람들을 벧학게렘 지방 사람 말기야라고 했습니다. ‘말기야’는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벧학게렘 지방은 포도원이 많은 지방이었습니다. 포도주는 보혈을 상징합니다. 참된 교회는 오늘도 십자가의 보혈이 흘러 넘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회개를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회개가 넘치는 곳에 십자가의 보혈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씻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회개치 않은 죄는 씻겨 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회개의 문인 분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삐거덕 소리가 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합니다. 회개의 문이 열려 있어야 천국의 은혜가 누려집니다. 회개의 문이 열려 있어야 성령의 운행하심이 강력해 집니다. 그랬기에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서 가장먼저 하신 기도가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였습니다. 잠시도 뒤로 미룰 일이 아니셨던 것입니다. 평생을 강도짓만 했던 강도가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주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도대체 그토록 짧은 시간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까? 간단했습니다.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자백하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 그 회개로 인하여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샘문입니다.

샘 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3:15)

샘문은 말씀의 문입니다. 은혜의 문입니다. 은혜는 율법에서 벗어나 보혈를 만날 때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전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은혜의 샘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샘문은 실로암 못으로 가는 문입니다. 또한 왕의 못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왕의 동산이 있는 곳입니다. 샘문은 미스바 사람들이 건축했습니다. 미스바 대각성 운동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블레셋 나라를 물리쳤던 회개운동의 주역들이었습니다. 샘문을 분문 곁에 두신 것은 참으로 놀라운 포석입니다. 회개하는 심령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죄의 깊이를 깨달은 만큼 은혜가 깊어진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죄와 대면해 보니까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이었던가를 고백했습니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로다”“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성도는 마음에 샘의 문이 있어야 합니다. 실로암 못으로 인도하는 열린 마음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세계로 인도하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왕의 동산이 에덴동산처럼 성도들의 마음엔 천국이 누려져야 합니다. 그 천국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에 천국을 확장시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생수가 흐르고, 안계시면 메마름이 흐릅니다. 사람들을 왕의 못, 왕의 동산으로 인도하는 것, 실로암 못으로 인도하는 것은 힘써야 할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그 다음은 학고스의 순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3:20-21) 교회에서도 목회자를 섬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교훈합니다. 평신도가 아무리 성숙하고 탁월해도 목회자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집니다.

 

일곱 번째로 마문입니다. 말들이 들고 나는 문입니다. 외부의 물물이 유통되는 산업도로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들과 마차들이 오고갈 만한 문이었다면 일곱 개의 문들 중에 가장 큰 문이었을 것입니다. 마문은 물질과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3:28)

이 문이 제일 크고 나중에 세워졌습니다. 어쩌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물질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그랬기에 마문은 제사장들이 세웠습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레위지파 사람들이 세웠습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문을 보수하게 했습니다. 물질에 시험들 기회가 없도록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만이 물질을 다룰 수 있습니다.

성도는 물질을 딛고 설줄 아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에덴동산에서부터 물질문제로 시험에 빠졌습니다. 먹는 문제로 넘어졌습니다. 따먹느냐 지키느냐! 였습니다.

 

물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돈에 마음이 묶이면 마음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영토가 묶입니다.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돈을 사랑하면 돈이 사람을 죄로 이끕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물질을 다루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온전한 십일조를 철저히 구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실례 : ‘어 성경이 읽어지네’의 저자는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하나님의 것으로 지켜져야 하듯이, 소득의 십일조도 온전히 지켜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3:8-10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는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지켜드림으로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신분 증명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의 물질이나 세속적인 돈이 필요한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성도들이 드리는 하나님의 것, 성도들이 드리는 연보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는 어려운 중에도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딤전 6: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셋째는 하늘에 쌓아 드리는 것입니다. 12:33-34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최순철목사 - 02/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