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알고 계셨다

 

1970년대. 그러니까 7080세대로 중등시절을 지낸 시골 친구들은 대게 몸빼(펑퍼짐한 나일론 바지)입은 어머니들에 의해 길러졌다. 수더분한 외모에 많이 배우지 못하셨지만 마음은 넉넉하셨고, 뙤약볕에 그을린 거무스름한 얼굴로 깊게 드리워진 주름들도 그냥 어울리시는 분들이었다. 멋없는 외모들이셨으나 삶을 맛나게 하시는 가슴으로 이웃과 관계하며 사셨던 분들이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이다. 전북 정읍군 칠보면 시산리 소재 칠보중학교. 면소재지 규모의 학교였지만 그때는 제법 운동장에 가득할 만큼 학생들이 많았다. 입학식 날 설레이며 두근거리던 가슴. 더벅머리에서 까까머리, 금장색 중(中)자 달린 검은 모자, 왼쪽 가슴에‘최순철’명찰을 단 검은 교복, 검정 고무신에서 단화로 변장(?)을 하고 제법 의젓한 자세로 폼을 제며 교정에 들어섰던 그날을 추억해 본다. 그랬던 제가 벌써 반 백년을 넘겼다.

그 시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용돈. 머리가 커가면서 친구들은 용돈을 필요로 했다. 저마다 부모님들께 용돈 타 쓰는 요령들을 전수하면서 귀여운 범법자들이 되어갔다. 오늘은‘영한사전이 필요하다’고 타 쓰고, 내일은 ‘프라임사전을 사야한다’고 타서 썼다. 그 다음에는 ‘콘사이스’를 사야한다고 어머니의 주머니를 털어갔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영어를 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셨던 것인지몸 빼 속주머니 속에서 꾸깃꾸깃 장터 떼 묻은 천환짜리 지전을 아낌없이 주셨다. 처음 한 두 번은 들키면 어쩌나 하는 두근거림이 컸지만 어느새 전과가 늘면서 담력(?)도 커져갔다. 그때마다 속아 넘어가시는 엄마를 뒤로 한 채 어디론가 달려가곤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영어는 몰라도 아들의 마음은 알았다. 글은 띄엄띄엄 아셨지만 아들의 가슴에 새겨진 하루하루는 느낌으로 아셨다. 아라비아 숫자를 모르셨고, 구구단을 아실리 만무했지만 장터에 자판을 깔고 앉아 당당히 외치셨다. ‘콩나물 시금치 사세요! 한단에 5환!’하하하. 어쩌다 단골을 만나면 ‘외상이니 달아 놓으세요!’에도 그렇다고 외상장부를 적지 않았다. 머릿속에 새겨졌다. 주어야 할 자와 받아야 할 자 사이에 세워진 소통과 관계의 힘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결속된 새로운 가족들이었다. 이웃 사촌, 동네 삼촌, 동네 어르신 그리고 우리들이 부모님! 그리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최순철 - 0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