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인데

 

이번 한국 집회일정은 무거움으로 시작되었다. 가족들을 만나서도 웃을 수 없었다. 한창 시,도,군 등 기관장들을 선출하는 선거운동이 있어야할 시기인데도 누구하나 마이크를 들고 자기를 알리는 사람이 없었다. 각 정당들의 색깔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은 국민 모두가 상복을 입어야 했다. 지난 화요일. 그러니까 4월 29일 오전 10시경. 집회중이었지만 마침 점심시간을 낼 수 있어서 안산 단원고를 찾아 합동분양소로 향하였다. 7호선 상봉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이수역에서 하차했다. 안내 글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큰 소리하나 없었다. 말없이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40분 정도를 가자 안산역이 나왔다. 택시를 탔다. ‘안산 단원고 합동분양소로 가주세요!’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고잔역에서 내렸으면 무료로 셔틀이 운행됩니다! 가실때는 셔틀을 타고 고잔역에서 내려 돌아가십시오!’친절함속에서 조차 고요함이 묻어났다. 크게 웃을 수 없고 반갑게 미소지을수 없었다. 분양소가 가까워지자 길거리를 가득 매운 조문의 프랑카드가 가로수를 따라 울타리처럼 줄지어 달려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등 여러 글귀들이 조심스레 유족들의 마음을 달레고 있었다.

분향소 여기저기 자원봉사단체들의 천막들이 가득했고, 조문객들을 맞아 아픔을 함께 했다. 분향소 입구에 여덟 분의 어머니(단원고 학생)들이, 출구 역시 여덟 분의 어머니들이 깊숙이 고개 숙여 조문을 받으셨다. 가슴이 울컥 눈물로 솟구쳤다. 갑자기 밀려오는 아픔을 감지한 순간. 울음이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도 마른 눈이 아니었다. 눈시울이 적셔져 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190여(당시 확인된 사망자의 수) 영정 사진들 곁에 이름과 붉은 십자가가 마크된 사람들. 저들은 교회 다닌 학생들이었다. 안산 시내 27개 교회가 연합으로 합동장례식을 드렸다고 했다.

5월은 가정의 달인데, 고2학년 생들. 아직은 부모들에게 어리광을 부려도 될 만한 자식들이었다. 분향소출구 왼쪽에 사연들을 적는 테이블 가득 포스티지가 놓여있었다. 조문자들 저마다 안타까움을 담아 유족들을 격려하는 글귀들이 오른쪽 임시 벽들을 따라 가득하게 붙여 있었다.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다. “수학여행 가랬더니 천국여행 떠났구나!” 하루 속히 실종자들을 찾기를 바란다. 어제 뉴스에서 유가족 대표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들었다.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파하지 마시고 일상으로 돌아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신을 마음으로 담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라는 것은 “더 이상은 이런 사고가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샬롬!

 

최순철 - 0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