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7-14

실례 : 인간은 연약한 갈대와 같습니다. 꺼져 가는 등불과 같습니다. 자연의 재해 앞에서 힘없이 휩쓸려 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중에 가장 위대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 위대함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토가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고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거듭난 영으로 하나님과 함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열쇠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했습니다.

 

무리들의 연합하여 방해하는 이유을 알라!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갔습니다. 절반의 높이를 넘어서갔습니다.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속이 탔습니다. 아무리 조롱하고 비웃어도 예루살렘의 부흥은 막을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망대를 세우고 문들을 달고 울타리를 연결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막을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방해하는 사람들은 멈출수 없었습니다. 저들은 사단의 손에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사실 누군가를 방해하고 비난한다는 것 자체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더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방해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저들 또한 멈출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자리에 서게 했을까요? 저들의 이런 모습에 우리는 책임이 없을까요?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나선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주변에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곳을 요란하게 하자고 합니다.“동쪽에 암몬 사람, 남쪽에 아라비아인, 서쪽에 블레셋나라의 아스돗 사람들이 연합했습니다. 동서남북에서 협공을 하겠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또 다시 사면초과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느헤미야는 한결같은 방어 기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9절입니다.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한결같은 방법입니다. 지난주에도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4절)라며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방어전략은 첫째가 기도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파수꾼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공격을 막고 전세를 뒤집는 승리의 기선 제압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대처하는 수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때도 찬양으로 기도하면서 외쳤습니다.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때도 찬양으로 기도하면서 승리했습니다. 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비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거짓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는 법, 승리하는 법, 교회의 이기는 법은, 그리스도인의 이기는 법은 나만 이기면 되는 법이 아닙니다. 다 같이 승리하는 법, 적들도 아군이 되어 함께 하나님 백성되는 법입니다.

기도하라! 와 파수꾼을 세우라! 입니다. 기도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파수꾼을 세워 주야로 방비하라는 의미를 복음적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오해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위에 수많은 적들과 원수들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가 되지 않으려면(시127:1) 두가지를 잘 해야 합니다. 하나는 보는 것과, 하나는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잘 보아야 합니다(21:6 파숫군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되).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잘 불어야 합니다. 전투상황인지 농사를 지어야 할 상황인지 잘 불어야 합니다.

33:6-7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7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오늘 연합해서 방해하는 무리들을 복음적인 관점에서 진단을 해보면 오늘날 우리의 신앙부흥을 방해하고, 가정건강을 위협하는 유혹과 미혹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그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방어해야 지킬수 있는지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산발랏과 함께한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부흥을 방해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기원전 721년경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했습니다. 이 때 앗수르왕이 사마리아 지역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다른 나라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열왕기하 17: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저희가 사마리아를 차지하여 그 여러 성읍에 거하니라

그 결과 사마리아 지역에 살았던 북 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 사람들이나 다른 여러 이방인들과 자연히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혼혈족이 되어갔습니다. 혈통을 중요시했던 남쪽 유대인들은 그때부터 사마리아 사람들을 멀리했습니다. 그런 적대감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큰 상처였습니다. 이스라엘 명절인 절기에도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혼합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열왕기하 17:27-32 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오늘날 현대질병 중에 우울증을 ‘죽음의 병’이라고 까지 부릅니다. 그런데 이 우울증에 빠지는 대부분의 증상이 바로 소외감, 거절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유일한 법이 한 사람만 친구가 되어주어도 우울증은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경우를 보면 왕따 당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더 외면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부흥에 박수를 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해야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러니 방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외면할 만큼 거룩한 가요? 거룩을 상실했습니다. 가정도 거룩을 잃어버렸습니다.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가정도 교회도 거룩을 회복해야만 복음의 능력이 살아납니다.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을 타락했다고 외면할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가 타락할 때 세상이 타락했습니다. 세상의 타락은 교회의 책임입니다. 교회나 성도는 아무나 환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탕자도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지체 장애우들도 환영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은 사마리아사람을 환영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사마리아 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사도들도 환영합니다. 사도행전 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사도행전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둘째는 도비야와 함께 한 암몬사람들입니다.

도비야는 암몬사람이었습니다. 왜 저들은 하나님의 부흥을 방해하는 쪽에 있었을까요?

저들에게도 쓰디쓴 뿌리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모압이나 암몬은 그 시작이 잘못된 민족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성에서 도망쳐 나온 뒤,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 죽고 홀로 술에 취에 있던 아버지를 통해 두 딸이 아버지를 통해 낳은 아들이 모압이고 암몬이었습니다. 건강한 가정의 질서가 파괴된 불륜의 자식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암몬과 모압은 여호와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기록했습니다.

13:1“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모세의 책은 신명기입니다. 신명기23:3“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출생 자체가 저주받은 것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읽고 말면 출생 자체가 저주 받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모압과 암몬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주 받은 출생이라면 우리 모두가 다 저주받은채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죄인들입니다.

출생이 저주가 아니라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를 모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3장 4 그들은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1)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2)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6 네 평생에 3)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을 떡과 물로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발람선지자에게 뇌물을 주어 하나님의 사람들을 저주하라고 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유였습니다.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평안도 형통함도 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구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저들도 환영합니다. 모압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모압 여인 룻입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나요? 룻기1:14-18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1)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2)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3)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4)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5)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모압의 신들에게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어머니를 죽어도 따르겠다는 결심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이제 내 백성입니다. 저도 이제부터 뼈속까지 이스라엘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굳게 결심함을 보고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드린 첫 번째 기도“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을 방해하는 세상이 있습니다. 자신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쓴 뿌리. 그 쓴 뿌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어떻게 자신들을 고쳐야 할지를 모릅니다. 우리가 알려 줘야 합니다. 저들도 우리가 되게 해야 합니다.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포기하면 저들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사단은 여러분의 가정을 효과적으로 위협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만들어진 하나님의 영토에 울타리를 허물기에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방어하는 전략은 첫째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 영적인 통신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기질을 갖추어야 합니다. 둘째로 파수꾼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어떤 파숫꾼입니까? 마음의 파수꾼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변화시켜 수가성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었던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생수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모압 여인 룻으로 하여금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다윗의 조상,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했던 것처럼 베들레헴 땅의 양식이 있음을 듣고 돌아가는 나오미처럼! 우리도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오미는 교회의 그림자입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세마포장 울타리와 같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게 할뿐 아니라 천국으로 향하여 귀향하는 정거장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도 올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깨어진 가정도 환영해야 합니다.

못생긴 사람도 행복할 수 있어야하고, 빈손된 사람들도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버림받은 사람의 손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침체에 빠져서 죽으려고 자살을 몇 번씩 시도했던 사람도..

절망가운데, 실패가운데, 약점으로 얼룩진 인생일지라도 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독한 사람도, 세상에서 거절당한 사람들도, 직장으로부터 외면 당한 사람들도, 건강으로부터 무너진 사람들도… 우리 해오름교회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방어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승리하는 것인지! 이제 겨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겨울을 껴안고 봄을 기다려온 여러분들의 가정에, 마음의 성전에, 교회에, 일터에 성령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응답을 받으세요. 성령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눈부신 끈기를 가지고 역경을 이겨드리세요. 오늘 여러분의 마음의 성벽이 완성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최순철목사 - 03/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