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7:39-60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자 /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그로부터 3차에 걸쳐서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갔습니다. 1차는 605년 여호야김 3년, 2차는 597년 여호야긴 1년, 3차로 586년 시드기야 11년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올때도 3번에 걸쳐서 돌아옵니다. 1차가 536년 고레스왕때였고, 2차가 457년 에스라시대였고, 3차가 444년이었습니다.

 

“감동을 따르면 사람이 따른다” 두 번째 말씀입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증거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감동받은 사람이었습니다. 12지도자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12지도자들의 이름을 보면 저들의 이름 속에는 복음의식이 분명한 이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대로 자신의 생애를 잘 마무리한 사람들입니다. 스룹바벨, 예수아처럼, 저희 백성을 구할 자, 은혜로운 자, 돕는 자. 행복케 할 자, 위로 자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12 지도자를 따랐습니다. 그를 따른 사람들도 조차 하나님의 감동 속에 젖어들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방나라 왕 고레스도 여호와의 감동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에스라1:1-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3.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왕의 마음을 감동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으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은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인도해 가는 곳입니다. 그 말씀이 설교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입니다.

17자손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예루살렘성전을 향하여 달려간 사람들입니다.

무너진 성전을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세워질 하나님의 집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렇게 스룹바벨성전을 완성했습니다.

지역사람들, 지파 사람들도 감동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작은 지파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감동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하였습니다. 훗날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를 축복하셨습니다. 그 후손에게서 사도 바울이라는 영적인 거장이 탄생합니다. 한때는 실수했고, 넘어졌던 가문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세 번째 감동을 따라 움직인 사람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장차 성전이 건축되면 성전에서 일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첫째로 제사장족 네 자손들

39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40.임멜 자손이 천오십이 명이요 41.바스훌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이요 42.하림 자손이 천십칠 명이었느니라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임멜 자손, 바스훌 자손, 하림 자손입니다.

39제사장들”4,289명이 돌아왔습니다.

1차 귀환자들이 42,360명이었으니까 총 인원의 10분의 1 정도입니다. 원래 제사장 지파에는 24반열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네 반열만 돌아왔습니다. 적은 수였지만 이 제사장들은 그루터기 같은 영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따라 기꺼이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성전이 무너지는 뼈아픈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채 지켜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24반차를 따라 성전의 일을 돌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았던 제사장들은 지금 어떻게 된 것일까요? 대부분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한채 정치와 야합하여 오히려 예레미야를 잡아 가두고, 입을 열지 못하도록 힘쓰는 방해하는 편에 서서 살아갔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고난의 세월을 당하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예레미야는 끊임없이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복음에서 멀어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왕들조차 귀를 막았습니다. 여호야긴 왕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감동하신 예언대로 70년만에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포로됨을 받아드리고 기꺼이 고난을 감당했던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신실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따랐던 제사장들입니다.

 

둘째로 레위사람들입니다. 아주 작은 숫자였지만 그루터기였습니다.

43.레위 사람들은 호드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레위 사람들”74명이 돌아왔습니다. 호드야 자손, 예수아 자손, 갓미엘 자손 세가문 뿐이었습니다.

4,289명에 비해 너무나 적은 74명만 돌아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사장들은 성전의 지도자들로 의복을 입고 나름대로 멋있는 직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위 사람들은 성전의 허드렛일, 수종자들입니다. 성전의 기물을 관리하거나,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피를 닦아내는 등 대부분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가는 사명입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 갔을 것입니다. 바벨론 70년의 세월 중에 이미 정착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살고자 했습니다. 바벨론 맛에 젖어 살았습니다. 누구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때 돌아온 74명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헌신된 레위인들이 많은 수록 향기롭고 보배로운 교회로 세워져 갑니다.

 

셋째로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적은 수였지만 그루터기였습니다.

44.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사십팔 명이요

다윗의 시대로부터 솔로몬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가 이스라엘국가로서 가장 영화를 누리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대상23:1-5“1.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2.이스라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았더라3.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니 모든 남자의 수가 삼만 팔천 명인데 4.그 중의 이만 사천 명은 여호와의 성전의 일을 보살피는 자요 육천 명은 관원과 재판관이요 5.사천 명은 문지기요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

레위 사람은 삼십세 이상만 38,000명이나 되었습니다. 문지기만 4,000명, 악기로 찬송하는 사람들만 4,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 제2의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들은 148명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에는 찬양하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찬양을 맡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넷째로 문지기들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적은 수였지만 그루터기였습니다.

45.문지기들은 살룸 자손과 아델 자손과 달문 자손과 악굽 자손과 하디다 자손과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팔 명이었느니라

아델은 ‘귀머거리’, 달문은 ‘압제자’, 악굽은 ‘교활하다’, 하디다는 ‘탐색자’라는 뜻이다.

귀머거리같은 존재라할지라도 문지기로 쓰임받고자 하나님의 감동을 따랐습니다. 전에는 압제자로서 뭇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변화되어 성전의 문지기가 되겠답니다. 저에는 교활하고 참으로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변하여 이제는 문지기중의 하나로 써 달라고 손을 들고 나아온 것입니다. 마치 블레셋 사람 오벧에돔처럼 말입니다.

 

넷번째 감동을 따라 돌아온 느디님 사람들입니다.

46.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자손과 답바옷자손과 47.게로스자손과 시아자손과 바돈자손과 48.르바나자손과 하가바자손과 살매 자손과 49.하난자손과 깃델자손과 가할자손과 50.르아야자손과 르신 자손과 느고다자손과 51.갓삼자손과 웃사 자손과 바세아자손과 52.베새자손과 므우님자손과 느비스심자손과 53.박북자손과 하그바자손과 할훌 자손과 54.바슬릿자손과 므히다자손과 하르사자손과 55.바르고스자손과 시스라자손과 데마자손과 56.느시야자손과 하디바자손이었느니라

이방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에 종살이를 했던 느디님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무려 32개 자손입니다. 제사장은 네 가문이 돌아왔는데, 느디님 사람들은 인원 수는 적어도 32가문이 기록돼 있습니다. 에스라 2장에 보면 악굽, 하갑, 아스나 자손까지 총 35가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원수는 2,3백 명에 불과합니다. 자녀들을 많이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신분이 종이었기에 종으로 태어나 험악한 세월을 살아가게 될 것을 고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가문의 사람들이 지금 이스라엘의 종살이로 들어와 있느냐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한 가문이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가문 한 가문 들어온 것입니다.

에스라2:70“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다섯째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이 돌아왔습니다.

7: 57.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소베렛 자손과 브리다 자손과 58.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9.스바댜 자손과 핫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몬 자손이니 60.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느니라

느디님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사람들은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입니다. ‘솔로몬의 자손’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입니다. 노예로 잡혀와서 힘들게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포로되어 살았고, 돌아와 예루살렘 본성에 입성하였습니다. 무려 10개 가문이 돌아왔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솔로몬은 자기 자손 때문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신복 때문에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느디님 사람들처럼, 솔로몬의 신복처럼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인내하면서 섬기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었을 것입니다. 무시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묵묵히 포로시절에도, 해방되어 돌아올적에도 묵묵히 주인들을 좇아 따라 나선 우직하고 충직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난한 환경이 하나님 나라를 더욱 사모하게 합니다.

 

실례 : C.S 루이스는 “우리가 하나님께 더 많이 항복할수록 우리는 더 진정한 우리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처음부터 우리 모두를 다르게 창조하셨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내 자신을 그분의 인격으로 채울 때에야 비로소 나는 진정한 내 인격을 갖기 시작한다.”

 

한눈에 남의 결점 보는 사람은 예리한 사람입니다. 보고 비판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냥 덮어주는 사람은 푸근한 사람입니다. 그 결점 보와해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돕고도 말이 없으면 거룩한 사람입니다.

 

최순철목사 - 07/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