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6:1-9

찰스 스펄전은 “하나님을 보는 즐거움”에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천국에서 방금 내려온 사람은 어떻게 살까요?”…우리 가운데 천국에서 방금 내려온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궁금해 할까요? 저라면 지금 설교를 멈추고 그분을 이 자리에 세워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 후에는 그분과 함께 집으로 가서 천국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볼 것입니다.

 

저는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이곳에 오셔서 여러분 개인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한 시간 후에 만나자 하신다면…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두려움 아니면 설레임입니다.

오늘 말씀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 걱정과 염려가 종합적으로 덮쳐오는 현실 속에서 두려워해야 마땅했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이 없이… 오히려 두려움을 뒤집는 역전의 역사를 이루는 비결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두렵게 하려고 술수를 쓰는 음모자들을 두렵게 만든 역사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으로 듣기 만해도 변화된 성도들 속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음모는 드러나고, 거짓은 드러나고 빛의 열매는 시작됩니다.

 

틈 매꿈 틈 만듦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6:1절 상)

무너졌던 성벽이 완성되었습니다. 빈틈을 남기지 않고 철저히 매꾸었습니다. 벽돌과 벽돌사이, 기둥과 기둥사이, 망대와 망대사이 문과 문 사이를 철저하게 견고하게 연결했습니다. 빈틈없이 매꾸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건강해져가는 것을, 부부가 서로 알아가면서 이해가 커져가는 것을 아주 질투하며 틈이 벌어져가기를 원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원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그를 거짓의 아비 마귀라고 부릅니다.‘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마귀였습니다.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귀들은 끈질기게 백성들을 이간질하고 미혹했습니다. 참소하며 비난하는 기질들을 접붙여 갑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냈고, 성벽을 완성해냈습니다.

느헤미야는 완성된 성벽 앞에서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 였더라”(6:1) ‘아직 성문을 달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정직한 현실 파악능력입니다.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실력입니다.

 

친화적인 음모

2.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오노평지’는 예루살렘에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한 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협상을 하자고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속에 칼을 품고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음모였습니다.

우리를 비난하고 괴롭혀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접근했습니다. 친한 척 다가왔습니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금방 넘어갑니다. 귀가 얇은 사람들은 쉽게 함정에 빠져듭니다. 원수처럼 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친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속에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저들이 쳐 놓은 덫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숨겨진 음모를 간파했습니다.

 

3.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4.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느헤미야를 죽이고자 은밀하게 덫을 쳐 놓고 끌어 드렸습니다. 느헤미야는 말합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나님의 일은 결코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을 자신 스스로속에 세워야 합니다.

 

5.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네번씩이나 초청하고 또 초청하였습니다. 참으로 거절하기가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겁쟁이라고, 비겁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음모를 알기 때문에 거절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는 느헤미야를 대놓고 비방을 합니다. 봉하지 않는 편지를 들여 보냅니다. 그리고 종들로 하여금 그 편지의 내용을 흘려서 백성들 사이에 악성 루머를 퍼뜨리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를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그 내용이 6절입니다.

 

상당히 효과적인 음모

6.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왠만한 소문은 무시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소문을 참으로 고약한 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보았습니다. 산발랏도 느헤미야의 좋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2:10“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달신에게 생명을 받았다’는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날부터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흥왕하게 하려는’사람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여기‘흥왕하게’라는 말은‘레바케쉬 토바’로‘번영’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번영케 할 사람, 이스라엘의 무너진 영광을 되살릴 사람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렇기에 심하게 근심하였습니다.

 

실례 : 우리들 교회 김양재 목사가 쓴‘가정아 살아나라’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묵상했습니다. “아무리 소문이 돌고 악성 댓글에 시달려도 거기에 맞서 화를 내면 싸움에 지는 것이다. 나를 해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야비하게 공격해 올 때 거기에 위축돼서는 안된다. 느헤미야가 아직은 성벽 역사에 전념할 때라고 산발랏의 초청을 거절한 것은 객관적으로 자기 위치를 알아서 거절한 것이지 주눅이 들어서 거절한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누구나 열등감과 상처가 개입되어 주눅이 든다. 그래서 조금만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화를 내고 남이 나를 비방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1권 206쪽).

그 책에서 비벌리 엔젤의 이야기를 인용했습니다. “사람들의 화에도 건강하고 건설적인 화가 있고, 병적이고 파괴적인 화가 있다. 건강하고 건설적인 화는 상대와 자신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와 건강한 관계를 촉진하는 도구가 된다. 반면에 병적이고 파괴적인 화는 상대를 위협 혹은 침범함으로써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적이고 과도하게 화를 내는 것이 병적인 화이다.”

 

우리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상대방이 아무 뜻 없이 한 말인데 내 열등감과 죄책감, 과거의 상처 때문에 화를 내어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화가 날지라도 화를 잘 풀어내어야 합니다.

 

지금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이 병적이고 방어적이고 파괴적으로 자신들의 화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니까 이제는 아예 투기와 시기를 넘어서 병적인 집착의 수준에 도달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병적인 화 때문에 스스로 함정에 빠져드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 부흥 집회에서 강사님도 하신 말씀이 “화가 났을때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라! 반드시 후회하게 되는 결과를 만난다!”였습니다. 산발랏은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으로 느헤미야를 곤경에 빠뜨려 갔습니다.

 

“8.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9.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음모가 자신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사단의 모략인 것을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 한분 밖에는 두려운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감당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방해를 받는 것을 결코 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방해 받지 않도록 내 손에 힘을 주옵소서!”간구했습니다.

 

“10.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므헤다벨은 ‘하나님께서도 좋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손자 들라야는 ‘여호와께서 구축하셨다’는 뜻입니다.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이름의 뜻만 보아도 대대로 믿음의 가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느헤미야가 찾아가 볼 정도로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신뢰하는 사람이 느헤미야더러 성전 외소에 숨으라고 합니다. 대적이 죽이러 온다는 말을 전합니다. 마치 하나님께 예언을 받은 것처럼 그럴듯하게 말합니다.

여기에 안 넘어 갈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믿음을 가장해서 접근하는 음모는 정말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지요?

 

11.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느헤미야가 첫째 ‘나같은 자’라고 하면서 ‘어찌 도망하며’라고 말합니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나처럼 변화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두고 힘들다고 도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변화된 사람의 믿음의 법칙, 믿음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전의 외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기에 ’나 같은 몸‘이 어떻게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웃시야는 유다 왕인데도 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냈다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았습니다(대하26:14-21).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원칙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12.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말씀을 원칙을 따랐더니 이겼습니다. 그것이 산발랏의 음모였음이 곧 들어났습니다.

항상 말씀의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내 소견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14.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내 믿음을 핍박하는 사람이 많아도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원수 갚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저들의 소행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한나의 기도를 참고하라.

 

 

최순철목사 - 06/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