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5:1-5

<눈으로 보아 변화된다>(복음본색138쪽)는 J.D 그리어 목사님의 글에 풍선예화가 나옵니다. 풍선을 공중에 띄우는 두 가지 방법으로 율법적인 종교생활과 복음적인 생활신앙을 설명했습니다. 풍선을 공중에 띄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입으로 열심히 불어서 풍선을 손으로 쳐올리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손으로 쳐올리는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멈추면 풍선은 떨어지고 맙니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풍선에 헬륨을 채우는 것입니다. 헬륨을 채운 풍선은 스스로 떠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올라가고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날아오르려고 합니다. 붙잡아도 올라갑니다. 끌어 내리려고 해도 또 올라갑니다.

종교생활은 내 노력으로 쳐올리는 모습니다. 주일성수도. 기도도, 성경읽기도, 섬김도, 봉사도, 자꾸자꾸 쳐 올려야만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헬륨 풍선은 스스로 떠 있어서 손으로 칠 필요가 없습니다. 헬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함이 영혼에 살아난 사람입니다. 마치 모세가 떨기 나무가운데서 하나님의 크심과 은혜로우심, 아름다우심을 본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헬륨과 같아서 우리를 계속해서 영적으로 날아오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멈추고 의로운 길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은‘죄를 그만 지어라! 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장엄함과 영광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고 하나님의 무게를 느낄 때, 우리 마음은 죄보다 그분을 더 갈망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보라! 장대 높이 달리 놋 뱀을 보라! 하십니다.‘하나님을 보라!’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오벧에돔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두고 기꺼이 법궤를 따라갔던 강력한 변화의 힘은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

5:1.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3.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5.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 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하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백성들이 그들이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원망하는데”밭과 포도원을 저당 잡히고 양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밭과 포도원을 담보로 빚을 내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녀를 종으로 팔아야 할 지경이고, 이미 딸들 중에는 벌써 종으로 팔려간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고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라는 대목이 가장 힘든 상황입니다. 아내마저 남편의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마저 성벽재건의 역사에서 빠져나가고 싶어합니다. 그만 하고 싶어요. 다 내려놓고 싶어요! 가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일이 옳은 일인 것은 알지만 배가 고프면서 까지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포도원을 저당 잡혔다는 말은 우리의 사업까지 담보로 내어 놓아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밭을 저당 잡혔다는 말은 가장 기본적인 일용할 양식마저도 먹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딸을 종으로 보내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떤 심정일까요?

그런데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다음 시간에 살펴 볼 것입니다. 해결책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나오기까지 백성들이 아우성소리는 가장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힘겨운 현실입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참 세상이 어수선 합니다. 한국도 어수선합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배가 400여명을 태운 채 기관고장으로 바다 한 복판에서 섰습니다. 아프카니스탄 동북부 산사태로 2,000여명이 실종을 당했습니다.

느헤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성벽재건 역사를 이루어낸 이야기는 오늘 우리 교회와 가정과 개인들을 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교회라고 해서 백성들이 함께 크게 부르짖어 원망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원망할 일이 일어납니다. 은혜가 충만한 공동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원망할 일이 일어납니다.

온갖 소리들이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4:20).

느헤미야였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헬륨을 채운 풍선처럼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만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성안의 백성들의 마음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강력함을 발휘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느헤미야의 가슴속에 무엇이 그토록 상황과 현실을 뛰어 넘는 이겨냄을 발휘하게 했고, 자신도 이기고 백성들도 이겨낼 수 있게 했을까요?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느헤미야의 비결

첫째로 옷을 벗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21“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동이 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습니다. 아예 예루살렘 성전에서 잠을 자면서 밤에는 파수하고 낮에는 중수하였습니다. 대적이 틈타지 못하도록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군대의 5분 대기조들처럼 옷도 벗지 않고 중수하면서 파수하였습니다.

옷을 벗지 않는 것은 불편하고 갑갑한 일입니다. 위기적인 상황이니 가벼운 옷도 아니고 전투복처럼 두꺼운 옷을 입었을 텐데, 갑옷을 입고 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갑갑하겠습니까?

우리의 결혼도, 가정도 그렇게 벗어버리고 싶은 갑옷 같습니다.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불편한 갑옷이 전쟁이 일어나면 나를 보호해 줍니다.

힘든 가정생활, 부부관계들마다 속사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지키고자 할 때‘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되어 나와 가족을 지켜줍니다.

성도는 거룩한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옷이 입혀진 사람들입니다. 헬륨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자신의 의의 옷이 아닙니다. 주님이 입혀준 옷입니다.

 

둘째로 각각 병기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4:23“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기계를 잡았다”는 것은 사명을 놓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명의 병기를 굳게 잡았습니다. 병기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도구입니다. 일할 때나 먹을 때나 길을 다닐 때나 항상 말씀을 떠올리며 행하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언제나 말씀을 앞에 두고 살았습니다. 복음이 우선인 관점으로 상황을 진단하고 처방했습니다. 이것이 이기는 법이었습니다. 승리의 기선제압이 거룩을 먼저 품는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승리는 먼저 자신과의 싸움, 죄와의 싸움에서 이김으로부터 이미 싸움을 기선을 제압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기는 법을 알았습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운동의 성공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방해하는 무리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순종했습니다. 끝까지 순종해드렸습니다.

 

셋째로 백성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나 가정은 서로의 힘든 사정을 기꺼이 말할 수 있는 곳이며, 그 힘든 사정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곳이 가정이요 교회라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지도자인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말을 들어 주었습니다. 함께 백성들의 아픔을 공감했습니다.

교회라고 해서 백성들이 함께 크게 부르짖어 원망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원망할 일이 일어납니다. 은혜가 충만한 공동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원망할 일이 일어납니다.

온갖 소리들이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4:20).

 

 

최순철목사 - 0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