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15-23

어느 목사님의 글에 “내 상처가 나으면 나는 이제 백신입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특효약입니다. 주위를 살피면… 오직 나만이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모든 직업의 진정한 목적도 하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참 신앙의 목적도 하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각은 내일의 나를 결실케하는 씨앗입니다. 절망은 희망의 뿌리입니다. 실패는 기회의 줄기입니다. 한계는 비전의 나뭇잎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면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그 꽃마저 져야 열매를 얻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지구상에 가장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안전한 곳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십자가 아래입니다. 십자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말씀되어 왔습니다. 구약에서는 법궤로 상징됩니다. 가장 안전한 곳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법궤였습니다. 구름기둥의 시원함이 있고, 불기둥의 따뜻함이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한 곳이어도 내가 블레셋 사람이면 위험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위험한 블레셋 사람이면서도 안전했던 오벧에돔은 왜 자손 대대로 안전했을까요? 그는 다윗이 생각하기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전하고 위험한 것은 언제나 길보다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믿고 계십니다. 믿을 수 있는 길로 인도하는 안전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위하여 길을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해되는 상황을 만났습니다.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살피고, 백성들을 두루 살폈습니다.

14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도전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의 싸움을 외부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으로 보았습니다. 외부적인 어려움은 바로 나로 인하여 생긴 내 내면의 쓴뿌리가 있기 때문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외부의 방해가 아무리 강하게 몰려와도 내 내면의 세계가 부드러움과 유연한 성령의 성품으로 담아내면 모든 것이 가하고, 복이 되는 역사를 이룹니다.

 

그들이 의도한 것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4:15)

대적들도 뜻한 바가 있습니다. 저들도 의도가 있습니다. 성벽을 쌓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여러 가지 꾀를 내어 성도들을 유혹했습니다.

실례 : 신천지라는 이단 때문에 교회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꾀를 내어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교묘한 꾀가 있습니다. ‘신천지계략을 폭로합니다’라는 영상에서 최근 신천지들이 성도들을 유혹(저들은 이것을 추수)하는 방법을 폭로했습니다. 요즘은 교회 앞 골목에서 서성거리다가 인상 좋게 생긴 교인을 골라 접근한답니다. “안녕하세요. 제 친구가 이 동네에 사는데, 예수 열실히 잘 믿다가 시험 들어가지고 교회를 안 나가는 된 친구가 있는데. 이 교회로 인도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지방에 살고 있어서요! 이러면 10중 8,9는 전도가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만나게 해주십시오.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세요!’저절로 추수꾼(미혹하는자)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전화를 해오고 자기발로 찾아와서는 사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3개월 정도 끌다가 한번 쯤 교회를 나와 주고는 기회를 봐서 자기가 옛날에 은혜 받았다는 제2의 미혹하는자(추수꾼)을 연결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우연히 만난 것처럼 옛날 교인과 음식점에서 동석을 계획해서는 결국 멀쩡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놓고 추수꾼 세 네 명이 달라붙어 조직적으로 미혹해낸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대적들은 유다사람들을 시켜서 유다사람들을 열 번씩이나 유혹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의 꾀를 폐하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혹이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받은 백성조차 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단의 꾀임수를 폐하십니다. 유혹이 없지는 않지만 결국은 눈치를 채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핵심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15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4:15)

하나님이 사단의 꾀를 폐하게 하시려면 우리가 해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으로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는 일입니다.

첫째는 성으로 돌아와서입니다. 있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서 있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일곱 개의 문들이 건강하게 소통되도록 해야 합니다. 네 개의 망대가 잘 지켜지도록 실제의 삶을 확실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는 각각 역사해야 합니다.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어떤 방해가 있어도 내 자리로 돌아와서 늘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일어나도 늘 하던 대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대적의 꾀를 폐하여 주시고 우리의 싸움을 싸워 주십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베드로전서 5:9)

우리 영혼의 가장 큰 두 대적은 내 안의 죄성과 외부의 유혹, 즉 대적의 꾀입니다. 원수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죄를 짓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나는 그가 지배하는 영역에 들어서게 되고, 그를 따르는 것이 됩니다. 죄를 지을 때,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입니다(에베소서 4:27).

사탄은 우리의 믿음이 굳건하지 않아서 상처받기 쉬운 그 시점에 틈을 탑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 위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도 역시 “믿음의 방패”가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제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귀를 꺾어버리는 방법은 그가 파괴하기 가장 원하는 바로 그것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믿음입니다.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라

4:16“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그 때로부터’입니다. 사단의 꾀를 폐하신 때로부터 새로운 전략이 주어졌습니다. 절반은 파수하고 절반은 중수합니다. 성벽재건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성벽의 파수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자기 관리에 있어서 중수와 파수의 균형이 깨어지면 안됩니다. 자기만족을 위한 봉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도취나 자기 만족에 빠져서 하는 자기관리는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혼자서는 성벽역사와 파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역사할 때 누군가 나를 파수해 줘야 합니다. 내가 치우지지 않도록 민장이나 목자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다른 지체들이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4:17-18“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이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한 손에 일을, 한 손에 병기를 잡게 했습니다. 특히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했습니다.

우리의 칼과 병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무기를 들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듣기

4:18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나팔 소리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불어야합니다. 느헤미야 곁에 나팔수가 함께 했습니다. 방해하는 무리들이 쳐들어 오면 얼른 나팔을 불어서 성벽재건에 동참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불었습니다. 나팔소리를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대적이 쳐들어온다는 싸인으로 부는 나팔소리가 다릅니다. 퇴각하라는 나팔소리가 다릅니다. 공격하라는 나팔소리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나팔소리를 분별할줄 알아야 합니다. 나팔소리를 들으면 해야할 한 가지 행함이 있습니다.

19.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20.너희는 어디서든지 1) 나팔 소리를 듣거든그리로 2) 모여서3) 우리에게로 나아오라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1) 나팔소리를 듣거든 2) 그리로 모여서 3) 우리에게로 나아오라입니다.

나팔소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말씀을 통해서 들어야 합니다. 들어야 ‘모여서’가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는 ‘나아오라’입니다. ‘나아오라!’ 할렐루야!

성벽재건은 실로 크고 넓은 역사였습니다. 치워야 할 과거의 흙무더기가 아직도 까마득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 아래에서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했습니다.

21.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무리의 절반은 동틀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습니다. 성벽역사를 신속하게 잘 마칠 수 있도록 무리의 절반은 창을 붙잡게 하였습니다. 개인의 묵상과 예배도 중요하지만 예배당에 모여서 함께 성령의 임재를 친히 체험하고, 목장에서 모여 함께 찬양하며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순종으로 살라

21.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동이 틀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습니다. 아예 예루살렘 성전에서 잠을 자면서 밤에는 파수하고 낮에는 중수하였습니다. 대적이 틈타지 못하도록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군대의 5분 대기조들처럼 옷도 벗지 않고 중수하면서 파수하였습니다.

옷을 벗지 않는 것은 불편하고 갑갑한 일입니다. 위기적인 상황이니 가벼운 옷도 아니고 전투복처럼 두꺼운 옷을 입었을 텐데, 갑옷을 입고 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갑갑하겠습니까?

우리의 결혼도, 가정도 그렇게 벗어버리고 싶은 갑옷 같습니다.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불편한 갑옷이 전쟁이 일어나면 나를 보호해 줍니다. 힘든 가정생활, 부부관계들마다 속사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지키고자 할 때‘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되어 나와 가족을 지켜줍니다.

“기계를 잡았다”는 것은 기계를 오른손에 두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도구입니다. 일할 때나 먹을 때나 길을 다닐 때나 항상 말씀을 떠올리며 행하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느헤미야의 승리는 먼저 자신과의 싸움, 죄와의 싸움에서 이김으로부터 이미 싸움을 기선을 제압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기는 법을 알았습니다. 거룩이 힘이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은혜와 능력을 받습니다. 거룩이 그릇이라면 거룩한 그릇속에 담길 은혜는 살아 있는 예배를 통해서 채워주십니다. 거룩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에 보혈이 흐르듯 죄사함 받았다는 확신에 찬 은혜가 흘러야 합니다. 십자가 아래 엎드려 통곡하는 시작이 바로 거룩의 회복입니다. 마음에 은혜가 차오르고, 두려움과 걱정스러움에서 자유로워질때까지… 그리고 구원의 감격에 감사가 넘쳐날때까지… 마음이 만만해 질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운동의 성공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방해하는 무리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순종했습니다. 끝까지 순종해드렸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멈추지 마세요! 지금이 통트기 직전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언제나 빛을 잉태하는 시간입니다. 당신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미래는 눈부신 것이어서 다만 안 보일 뿐입니다.

 

최순철목사 - 0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