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10-14

“인생수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호스피스 창시자인 엘리자벳스 퀴블러 로스 여사가 썼습니다. 로스여사는 “삶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수업과 같다. 그 수업들에서 우리는 사랑, 행복, 관계와 관련된 단순한 진리들을 배운다. 오늘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삶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흐르는 단순한 진리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인생수업20).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이다(19쪽). 사람들은 인생의 최악의 상황(죽음에 이르는 병, 사업의 실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극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할 때 인생에 대하여 가장 잘 배우게 된다. 조건이 가장 나쁠 때 오히려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배움을 통해 내일의 행복을 가꾸게 되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삶인 것이다.(인생수업21쪽).”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사방으로 포위된 극한 상황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밖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을뿐 아니라 안에서 조차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나라를 잃게 될 위험에 빠졌습니다. 사실은 이보다 더 큰 걱정은 앞으로의 시간입니다. 성벽재건에 실패하게 되면 이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들에게 또 다시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왜 이런 위기가 찾아온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안에 들어오지 않고 거룩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삶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의 검이 저들을 지켜줄 수가 없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위기를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처해갔는지를 통해서 우리 인생에 배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예배와 은혜의 자리로 나아오지 못하도록 거절감속에 빠뜨렸습니다. 암몬 사람들을 혈통을 비난하며 열등감, 죄책감에 빠뜨렸습니다. 아라비아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보았던 불기둥 구름기둥의 역사,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기둥의 역사, 만나의 역사 체험했던 이스라엘은 이것은 선민인 나만의 것이다라는 잘못된 이해로 아라비아 사람들을 불신앙의 자리에 방치했습니다. 블레셋 아스돗 사람들이 지금 성벽재건에 방해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법궤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빼앗긴 이유는 거룩을 상실했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수 없었으니 빼앗겼고, 빼앗긴 법궤가 블레셋을 돌다가 우상들이 부서지고, 몸에 악한 종기들이 돋았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거룩해야 할 교회의 책임이요, 성도들이 우리들의 책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벽 안쪽에서 유다인 스스로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유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직면했습니다.

다섯째 유다 사람들입니다. “마음의 두려움”입니다. 또 다시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4:10)

동서남북으로 포위되었습니다. 숫자적으로 보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두려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점점 힘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눌렸습니다.‘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입니다. 원어로 보면 ‘그 흙무더기’라는 뜻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불타면서 무너졌던 바로‘그 흙무더기’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 흙무더기가 다 없어져야만 솔로몬 시대의 성벽정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아직도 많다’는 것입니다. 관점이 나빠졌습니다. 바로 얼마전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점이었는데, 지금은 ‘아직도 많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힘들어진 것입니다.

 

내 인생의 그 흙무더기

나를 낙심하게 만드는 그 흙무더기가 있습니까? 바벨론에 의해 빼앗겼었던 지난날의 쓴뿌리가 떠올랐습니다. 성전, 예배, 감사, 자유, 행복, 가정, 자녀… 다 빼앗겼습니다. 패배로 얼룩진 과거의 상처가 다시 아파왔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자 또 과거 당했던 패망의 그림자가 몰려왔습니다. 패배감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힘이 빠지니까 하던 일이 무거워보였습니다. 내 삶을 무겁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은 밖에서 오는 원인도 있지만 사실 더 큰 원인은 내 안에 있습니다. 즐거움을 품으면 얼굴이 빛납니다. 근심을 품으면 심령이 상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15:13). 마음에 즐거움의 근육을 강화시키려면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 심령이 가난한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근심의 주름살도 펴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성벽을 잘 쌓아왔던 백성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백성들이 힘이 빠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방으로 포위하고 있는 외부의 적들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11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의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하고

둘째는 끈질긴 유혹이 두려웠습니다. 12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 와야 하리라 하기로

한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열 번씩이나 끈질기게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사단이 열 번씩이나 찾아와 두려움을 주었다면 우리는 열한 번 두려움을 물리치고 느헤미야와 함께 하면 됩니다. 원수들보다 한번만 더 하면 이깁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은 상당히 치명적인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유다인들도 주위의 사방을 포위한 사람들도 더 이상 우리의 대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위기가 저들에게 기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나도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기회, 저들에게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도록 도와주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대처

성벽완성이 눈앞에 다가오니까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다 되어가니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럴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느헤미야4:13-14절입니다.“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1)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2)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3)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하였느니라

첫째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집을 위하여 싸우라!’

느헤미야는 두렵지 않았습니까? 두렵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더 두려우신 주님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의 마음속에는 근심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우신 분인지 알았습니다.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으면 다 됩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걸어갔던 시간은 기적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덮쳐오자 두려움에 사로잡혔을때는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두려움은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법

삼상 17장에 느헤미야의 승리와 같이 똑같은 방법으로 두려움을 정복하고 승리를 이룬 다윗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골리앗은 참으로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이 두려워했습니다. 삼상17:11“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그런데 다윗의 마음은 골리앗을 보고 놀람이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다윗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더 크신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자도 잡아 봤었고, 곰도 물리쳐 보았던 다윗의 마음은 이미 골리앗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관점이 바뀌는 문제의 해결책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이 열리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실례 : 인생 자체가 기적입니다. 우리의 출생 자체가 3억개의 정자 중 하나가 선택되어 태어난 것이 바로 나입니다. 그렇게 선택되었다고 해도 7일간의 긴 여정을 거쳐 정상적인 착상을 하는 과정. 두 염색체가 합해져 46개의 배수체가 되고, 거기서부터 세포 분열을 거듭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통해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이 태어난 것입니다. 통계적으로 이렇게 태어난 태아의 생존율은 무려 27억분의 1이라고 합니다.(어떻게 얻어낸 인생인데 6쪽).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시편 34:4절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사도 바울도 같은 의미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처방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뒤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두려운 현실을 무실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쉽게 떨쳐집니까?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지만 성도가 해야 할 일은 ‘더 두려우신 하나님’께 두려움을 주는 현실을 품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할까요?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품어질 때까지입니다.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 올때까지, 평안을 지나서 오히려 그 현실이 감사로 고백될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져야 손에 들고 있는 창과 칼과 활을 가지고 가족들을 위해서 제대로 싸울 수가 있습니다. 만만해질 때까지 기도하면 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최순철목사 - 03/3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