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에 들게 하는 회개(행2:22-27)

사도행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회개를 전제로 시작되었다. 성령이 내게 임했는지? 아닌지? 회개를 했는지 아닌지? 바르게 정리되지 못한 채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회개를 바르게 정돈하려면 반드시 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죄의 기원은 아담으로부터다. 아담은 사실 축복가운데 삶이 시작되었다. 에덴이라는 최고의 환경에서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겨우 하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아주 쉬운 계명만 지키면 되었다. 그런데 아담은 그걸 먹어 버렸다.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지 않았던 것. 이것이 바로 죄다. 하나님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죄다.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죄다.

요한복음16:9“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그리고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은 예수를 죽이고자 하고 오히려 빌라도는 살리고자 했다. 십자가에 죽으심 이후 그 무리들은 복잡한 상황이 다 잘 정리된 줄로 여겼다. 별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퍼져나가자 반전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불안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떨었다. 바로 이때 마음을 찢고 무릎을 꿇었던 사람들이 있다. 행2:37절에 베드로의 말씀에 마음이 찔렸던 저들이 무릎을 꿇었다. 이것이 회개이다. 예배를 드리는 자리는 내가 말씀을 듣기 위한 자리이다. 말씀을 들을 때 찔림이 오면 회복과 회개의 시작인 것이다. 찔림의 시작이 바로 은혜의 시작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거의 표면적인 모습이 대부분이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방법은 텅빈 창고처럼 한산하다. 어느 날 기도의 자리에 앉았을 때…‘왜 이제 왔느냐?’라고 말씀하시는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한다. 간절한 기도는 해보니까 안 되더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시작된다. 탕자는 알았다. 자기 마음대로 해보니까 안 되더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나와 진실한 관계를 원하신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위해 지체된 우리는 손처럼, 발처럼, 오장육부처럼 제 각각 자기의 역할을 다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눈이 김치를 알아보았다고 내 것이라고 주장해서 눈에 넣어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눈은 알아보는 것으로 족하다. 먹는 일은 입이 하게 해야 한다. 우리 각자의 모습을 돌아보자. 구부러져 있으면 펴야 한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면 교회 생활도 잘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잘 안 나온다.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 상처받은 것, 구부러진 것들은 다 아버지의 간섭하심 아래 들어가서 내어 놓아야 한다. 하나님 제일주의, 사람 제이주의, 물질 제삼주의로 사는 것이 맞다.

 

최순철 - 07/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