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7:61-73

농사를 천직으로 살아가는 크리스찬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제의 땅은 천수답으로 산 중턱에 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양수기로 물을 끌어다가 논에 물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하룻밤 지나고 나면 물이 없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바로 아래 땅 농부가 훔쳐가는 것입니다. 형제가 잠자는 틈을 타 논둑에 물길을 내고 자기 논으로 물을 빼냈습니다. 형제는 황당했지만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참았습니다. 하루 이틀 하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되었습니다. 이제는 용서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세상과 다른 성도들의 삶의 원칙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참고 용서했을 때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은혜가 넘치고 승리가 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날마다 물을 채우고 남이 물을 훔쳐간 것을 허락하면서도 마음에 평강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마음에 소리가 있었습니다.‘참고 인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형제는 그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아래 논에 먼저 물을 채워 준 다음 자신의 논에 물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의 논에 물을 채우는 반나절 동안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틀이 지나지 않아서 아래 땅 주인이 형제를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물을 훔쳤다고 고백하면서“교회가 그렇게 가르치는 곳이라면 나도 당신들이 믿는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7:73“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개혁한글에서는 “본성에 거하였느니라”로 번역됨).

본성을 자기들 성읍으로 삼은 사람들 중에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본성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울타리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망대로부터 자신들은 지켜짐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확실히 알 수 없는 사람들

1) 숫자로 확실하지 않음.

느헤미야7:61-62“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62.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가 육백사십이 명이요

에스라2:60“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652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느헤미야는 642명이라고 기록했습니다.

2) 가문이 확실하지 않음.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에스라2:59 텔메라, 텔하르사, 케룹,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들은 이러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들 조상의 가문과 그들의 씨로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인지를 보여 줄 수 없더라.

‘조상의 가문과 그들의 씨’를 보여 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씨를 보여 줄 수 없었다는 말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보여 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3) 이스라엘 사람인지 보여 줄 수 없었다는 의미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다는 말입니다. 들라야나 도비야나 느고다의 어머니가 젊은 시절 밖에 나갔다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어려움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들라야, 도비야, 느고다였습니다. 이 세 사람이 커서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아 가문을 일으켰습니다. 저들은 바벨론 지역 중에서도 델멜라와 델하르사, 그룹, 앗돈, 임멜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어머니들입니다. 뜻밖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아이들만큼은 바르게 키워냈다는 것입니다.

들라야(여호와께서 자유롭게 하셨다), 도비야(여호와는 선하시다), 느고다(구별된 사람)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다나라의 왕족들이었습니다. 정치적 사상적, 종교적인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를만큼 문란했던 여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뜻밖에 어려움을 당했으나 태어난 아이를 “여호와께서 자유롭게 하신 아들”로, “선하신 여호와이심을 드러내는 아들”로, “구별된 아들”로 자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문을 일으켰습니다. 무려 642명, 652명이나 되는 가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여호와의 감동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출할 사람들을 찾았을적에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고향,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의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드리려 일어선 것입니다.

 

둘째로, 찾아도 찾지 못한 이름

63.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불린 자라 64.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찾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5.총독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1) 찾아도 찾지 못하는 자기 이름들이 있습니다.

2)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3)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들이 지성물을 먹을 수 없지만, 장차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난 후에는 지성물을 먹을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누굴까요?

 

실례 : 대제사장의 의복 중 가슴 부위에 12개의 보석이 있고, 각 보석마다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판결의 흉패라고 불리는 이 흉패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을 넣어 두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석류인지 아니면 모양은 어떠한지, 어떻게 제작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림이란 말은 을 뜻하는 우르의 복수로 빛들이란 말입니다. 둠밈온전함을 뜻하는 톰의 복수형으로 완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를 ‘빛과 공의’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림의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하나님 뜻이 빛으로 계시되는 성령의 나타남이었습니다. 그러므로“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은 메시야로 오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바르실래처럼 살고자 했던 바르실래

다윗은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자, 밤에 백성들과 함께 맨발로 울면서 도망합니다. 요단을 건너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많은 양식을 가져와 왕과 백성들을 공궤하였습니다(삼하 17:29).

당시 이스라엘의 인심은 압살롬에게 넘어갔습니다. 다윗의 집은 정말 이젠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윗에게 “비루한 자여, 피를 흘린 자여!” 하고 저주한 시므이의 말은 그 분위기를 잘 말해 줍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다윗을 따랐다면 이것은 다윗의 중심을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면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은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했습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이 바로 바르실래였습니다.

다윗으로서는 큰 위기 상황이었지만, 바르실래의 섬김은 다윗의 마음에 큰 위로와 힘을 주었던 것이다. 바르실래의 공궤를 받으면서 다윗은 전열을 정비하여 싸움을 이겼고, 압살롬은 패하여 죽임을 당했다. 전쟁에서 이기고 예루살렘으로 개선하는 길에, 다윗이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하자, 바르실래는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삼하19:36) 하며 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당하는 쓰라림은 도리어 큰 영광을 품는 그릇으로 예비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당하는 환난은 큰 소망을 이루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을 모신 삶은 흉한 일이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좋은 일이 도리어 넘어짐이 됩니다.

청컨대 종을 돌려 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삼하 19:36,37). 그는 대접받는 것을 원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믿음 안에서 살다 믿음 안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 보시시기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산과 들에 피고 지는 꽃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 가려는 것이 바르실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어둡고 어려운 시기에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를 아름답게 드러내셨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바르실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같은 이름으로 나오는 바르실래는 실제 바르실래의 딸을 아내로 삼아 자신의 이름을 바르실래로 바꾸어 가진 바르실래였습니다. 장인 어른을 존경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존경받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바르실래의 모습에서 몇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1) 마태15:21절에 보면 흉악한 귀신들린 딸 가진 가나안 여자입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한 마디로 ‘네 소원대로 되리라’

2)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베들레헴을 고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 삼았던 룻입니다. 복음은 만민 앞에 평등합니다. 선민이든 이방인이든 편애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희생한 사람들

7:66.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7.그 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그들에게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사십오 명이 있었고 68.말이 칠백삼십육(736) 마리요 노새가 이백사십오(240) 마리요 69.낙타가 사백삼십오(435) 마리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6,720)마리였느니라

1) 노비가 7,337명.

1차로 돌아온 헌신 자들이 42,360명 외에 노비가 7,337명이었습니다.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르는 주인들을 위해 노비로서,

2) 노래하는 자가 245명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따라 온 것입니다. 노비들은 몸으로 주인들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돕는 사람들입니다.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감동을 줍니다. 군인에게는 군가가 있습니다. 군인의 정신을 함양하고 굳건하게 합니다. 두려움을 몰아내고 용기를 일으키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 군가입니다.

3) 예물을 드린자들입니다.

족장과 방백들, 그리고 백성들입니다. 7:70“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71.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72.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언제나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희생하는 사람들, 몸을 희생하는 사람들, 물질을 희생하는 사람들, 재능을 희생하는 사람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삭이라는 희생제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이삭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증명 될 수 없었습니다.

 

본성에 거한 사람들

7:73“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

본성에 거하게 된 사람들. 이름은 알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숫자로 계수될 정도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숫자로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신분과 조상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면을 아낌없이 저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묵묵히 주인을 따라 나선 노예들, 종들, 노래하는 사람들, 그런중에도 예물을 아낌없이 드렸던 족장들, 방백들, 백성들. 하나님은 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최순철목사 - 07/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