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8:1-12

말씀 : 다시 흥하라 (29) / 수문 앞에선 예배자들

본문 : 느헤미야 8:1-12

찬송 : 35장(통50장) 큰 영화로신 주 헌금 찬양

 

<들어가는 말>

실례 : 1895년 을미사변이 있을 당시 전국 교회는 채 30여개에 지나지 않았고 교인 수는 1천명 미만이었으나 교회는 민족의 위기 앞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독립과 민족 정신을 이끌어 갔고 3.1 운동을 통하여 국권 회복에 앞장을 섰습니다. 당시 조선 총독부가 남긴 비밀 문건 속에는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기독교는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위기는 경제적인 것보다도 도덕적인 위기이며 신앙적인 위기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영적 부흥이 일어나 가정의 부흥, 직장의 부흥, 사회의 부흥이 일어나길 위해 쓰임받으시기 바랍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든 이유

1.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제2의 예루살렘 성이 완성되었습니다. 느헤미야처럼 신실한 사람, 하나님으로 감동된 사람이 총독으로 세워졌으니 걱정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 곁에 세워진 행정관들도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모릅니다.

느헤미야의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입니다.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사람(느7:2)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든든했을까요? 행복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들이 넘쳐났습니다. 삶이 안정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배에 대한 소원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들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동시에 곳곳에 흩어져 있었던 백성들이 마음속에 예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왜 “일곱째 달에 이르러”서야 모여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일곱째 달에 모여든 이유

학사 에스라가 기록한 성경을 보면 일곱째 달에 대한 근거를 찾아 볼수 있습니다. 일곱째 달에 모여들었다는 것은 바로 1차 포로 귀환자 42,360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6개월 동안은 각자의 성읍으로 흩어져 가정이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달이 될 때 예루살렘으로 모여서 스룹바벨 성전 건축과 동시에 번제가 시작되었습니다.

3:1“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에스라3:12.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13.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그리고는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에스라 목사님께 “목사님 모세를 통해서 주셨던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 주십시오!”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2.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이르러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예루살렘 성안에 말씀을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말씀이 궁금해진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성전만으로는 좁았던 것 같습니다. 좀더 넓은 곳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수문 앞 광장이 넓었습니다. 수문 앞이란 예루살렘 성전 남동쪽에 위치한 기혼 샘 옆 광장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편안해 졌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갈급했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안정되고 편안해져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간이 있습니다. 영혼이 거듭난 사람의 마음에는 이런 영의 양식에 대한 배고픔이 살아 있습니다.

육신의 배가 고프면 자연스럽게 음식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강단에 올라선 에스라

4.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평범한 자리에서는 멀리까지 말씀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높은 강단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날을 기다려 온 듯합니다.‘나무 강단에 서고’강단까지 미리 만들어 뒀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그 날을 준비하며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7개월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에스라가 강단에 올라서자 에스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함께 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맛디댜(여호와의 선물), 스마(들음과 순종), 아나야(여호와가 응답하셨다), 우리야(여호와의 등불), 힐기야(여호와는 나의 재산), 마아세야(여호와의 사역)입니다.

왼쪽으로는 브다야(여호와께서 구속하셨다), 미사엘(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말기야(나의 왕은 여호와), 하숨(부유함), 하스밧다나(친구가 되다), 스가랴(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 므술람(보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처럼 살아온 좌우편에 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아시겠지요? 백성들이 모여들 그날을 위해 학사 에스라는 이렇게 준비된 사람들을 세워놓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선물같은 사람, 들음과 순종이 즉각적인 사람, 기도의 응답에 확신을 가진사람, 여호와만 나의 왕을 삼은 사람, 여호와께 완전히 구속된 사람, 여호와의 사역에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도자는 외로운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외롭다고 자신을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해 가는 52일 동안. 에스라는 레위인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속에 말씀의 성벽을 완성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준비시켜 온 것입니다.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섬

5.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얼마나 갈급했으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포로생활에서 지친 영혼들, 돌아와서도 수많은 세월을 성벽없이 불안에 떨며 살아왔던 성도들이었습니다. 이제 안정되었습니다. 평안해졌습니다. 영혼에 대한 갈급한 마음이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에스라 목사님이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말씀의 권위를 높여 드리는 백성들을 보아야 합니다. 예배의 중심은 말씀입니다.

 

우리도 부흥을 체험하려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부흥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교회 위에 주권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일어납니다. 말씀을 상품화한 부흥이 아닙니다. 말씀을 마케팅으로 사용하는 부흥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 오순절처럼 성령을 충만케 해 주시면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질적 성장과 양적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언제든지 부흥은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어 내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17)”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깨닫게 돌이키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4: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23:29)”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잠 29:18)

이시대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닙니다.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8:11)”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진리로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40:8)”

어떤 교회가 부흥할 지 여부는 그 교회 교인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는 비판하기 위해, 세일하는데 개인적인 참고를 하기 위해 들으면 안됩니다. 아니면 목사님이 불쌍해서 들어주는 것으로 들으면 안됩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 때

6.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에스라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며 손을 들고 아멘 아멘”했습니다. ‘손을 들었다’는 것은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름’의 의미이고, ‘아멘 아멘’으로 응답한 것은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동의와 순종하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강단에서 복음이 선포되면 성도들은 순종합니다.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는 것은 복음속에 흐르는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 오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말씀이 제대로 전파되기만 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듣고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사람들

7.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한가지 이상한 장면이 나옵니다.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입니다. 제 자리에 서서 말씀을 듣는데, 서 있는 동안 다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서 있는 마음’속에서 작동합니다. 복음운동의 효과는 그런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만 주는데 그 뜻이 해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운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만 있는데, 우리 중에 누군가는 그 말씀이 마음으로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깨달은데로 순종합니다. 오늘 말씀에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기복적인 설교로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복 받으라는 말씀만으로는 강력한 용사들이 훈련될 수 없습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성도들로 길러지기 위해서는 좌우에 날선 검처럼 관절과 골수가 찔리는 아픔이 동반되는 말씀을 담아내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젖이나 먹는 성도들로는 마지막 때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백성이 우는 지라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말씀을 듣는데 우는 겁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는데, 수문 앞에 흐르는 물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백성들이 눈에서 흘러내렸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흘러 내리는 눈물이었습니다. 강단으로부터 흘러오는 은혜의 강물이 백성들이 가슴을 타고 번져갔습니다. 한 사람이 울었습니다. 옆에 사람이 울었습니다. ‘다 우는지라’다 울고 말았습니다.

저는 9절 말씀에서 감동을 받은 대목은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여기서 총독 느헤미야의 자세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백성들이 느헤미야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 학사 에스라가 정상에 올라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백성들의 시선이 온통 학사 에스라에게 향하여 있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전혀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학사 에스라의 말씀앞에서 자신은 그 옆에 서지도 않고 백성들 속에 함께 서서 울며, 엎드려 경배하며, 아멘 아멘 손을 들고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지도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학사 에스라도 그렇습니다.

10.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최순철목사 - 07/2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