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해서는 안 될 이유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사5:13). 무지함은 <미벨리 다아트>로 <닳아 떨어지다>의 미벨리와 <지식>의 다아트의 합성어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기름진 포도원에 심긴 극상품 포도나무와 같았습니다. 좋은 포도 맺기를 좋은 포도주 내기를 기대했으나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백성은 그랬습니다. 주가 행하신 일(십자가)을 새겨주시려 기적과 능력과 역사로..홍해를 가르고 출 애굽케 하시고, 반석을 갈라 생수를 주시고, 옷자락으로 덮으시듯 시원한 구름 그늘아래, 따뜻한 불꽃 아래 광야 40년 동안 백성들을 가꾸고 다듬어 가셨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 안주하면서 서서히 내 백성들은 무지함에 빠져들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해 놓고 육체로 마치듯, 입으로는 주를 부르나 그 마음은 주님조차 알아 볼 수 없는(마7:21-23) 패역한 백성들이 되어 갔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뜻은 없고 자기 뜻대로 사는 교만, 자신을 높이고 자신만 옳다는 여기는 거만, 덕을 해치는 태도의 악한 행위, 마음을 구기게 하고 얼굴에 웃음을 사라지게 하는 패역한 입 등은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것들입니다.

어린 시절 친구 손에 끌려가 받았던 부활절 달걀이나 성탄절 선물꾸러미를 뇌물(?)로 받은 죄(?) 때문에 시작된 교회 발걸음이 있습니다. 주를 믿음으로 아는 지식 없이는 희미하게 띄엄띄엄 들려오는 강단 설교는 달팽이관을 돌다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어쩌다 웃기는 이야기에 웃어주고, 어쩌다 울리는 이야기에 울어주며 설교 잘들었다! 는 사람은 여전히 무지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만난 적 없이 그냥 그렇게 아니.. 주님을 만났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주님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내가 나 조차도 알 수 없는 그런‘나’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버지가 보내신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지식(요17:3)인데, 이 지식을 버린 자는 영생을 버린 것과 같고, 그리고 지식을 버린 무지함의 결과는 반드시 이제 곧 굶주림과 목마름의 시작인데..어찌해야 좋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고단함으로 인해 울지 않기를 바랍니다. 염려스러움으로 눌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린 말씀을 배우고 확신하는 자리에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골2:7).

 

 

최순철 - 09/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