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 하십니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눅18:41>

나를 번민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이 나 때문에 번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을 합니다(눅18:35). 앞을 보지 못하니 눈앞이 깜깜하여 삶 자체가 번민으로 가득합니다.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오늘은 몇 끼나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오늘이 해결되었다 해도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런 번민으로 가득했던 맹인의 삶에 햇살 같은 희망이 시작됩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듣기입니다.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였습니다. 자기 앞에 무리가 지납니다. 귀가 발달된 맹인으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느낌의 소리였습니다. 구걸을 위해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귀를 열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둘째 묻기입니다. <이 무슨 일이냐 눅18:36>고 물었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을 바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답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물어야 합니까? 눈을 뜬 이에게 입니다. 영적인 안목을 가진,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눅18:37> 하였습니다.
셋째 깨닫기입니다. 무리들이 따르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예수께서 누구이신지를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었습니다.
넷째 보기입니다. 이거였습니다. 그가 눈을 뜨지 못한 것은, 그가 주리고 목말랐던 것은,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날마다 번민했고, 일생토록 절망적인 삶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도 번민에 빠뜨렸습니다. 그를 낳은 부모, 그 형제까지..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난 후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만날 수 있었나요?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눅18:38> 외쳤습니다. 부르짖었습니다. 무리들이 꾸짖었지만 잠잠하지 않고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만나 주실 때까지 그 외침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는 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맹인은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눅18:43> 하였습니다. 그의 평생에 처음 뜬 눈으로 가장 먼저 본 것은 예수님 얼굴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번민하는 일, 우리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 예수님께 나아가며 부르짖으면 번민은 물러가고 내 삶에 주의 전능하심이 나타날 것입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주의 얼굴을 바라 볼 때, 그 믿음이 이제까지 번민으로 가빠졌던 우리의 숨결을 주님의 숨결로, 주님의 호흡을 불어 넣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최순철 - 03/05/17